11년 만에 정규 3집 ‘위버맨쉬’로 돌아온 지드래곤
위버맨쉬(Übermensch).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삶의 목표로 제시한 인간상인 ‘초인’을 뜻하는 말이다. 영어로는 ‘비욘드맨(Beyond-Man)’, 즉 ‘넘어서는 사람’을 뜻한다. 이 심오한 철학 용어가 K팝을 파고들었다. ‘K팝 킹’ 지드래곤(G-DRAGON·GD)의 정규 앨범 ‘위버맨쉬’를 통해서다. 스스로 ‘위버맨쉬’가 되기를 자처한 지드래곤은 자신을 넘어서는 초인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2월25일 발매된 지드래곤의 정규 3집 ‘위버맨쉬’는 2013년 9월 발매한 솔로 정규 2집 ‘쿠데타’ 이후 11년5개월 만에 발매한 솔로 정규 앨범이다. 2009년 첫 솔로 앨범 타이틀곡 《하트브레이커》를 시작으로, 《크레용》 《삐딱하게》 《니가 뭔데》 《무제》 등 다수의 솔로곡으로 사랑받은 그는 지난해 선공개한 《파워》와 《홈 스위트 홈》이 수록된 앨범 ‘위버맨쉬’를 통해 ‘K팝 킹’을 넘어 ‘올 타임 레전드’ 슈퍼스타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위버맨쉬’, 초인의 여정에 내디딘 첫걸음
앨범은 선공개곡 두 곡과 타이틀곡 《투 배드》를 비롯해 《드라마》 《아이 빌롱 투 유》 《테이크 미》 《보나마나》 《자이로-드롭》 등 여덟 곡으로 채워졌다. 지드래곤은 전체 트랙을 프로듀싱하고 각 트랙 세부 구성부터 앨범 전체 콘셉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 그래미 수상에 빛나는 팝스타 앤더슨 팩과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 등의 트랙 참여가 눈에 띈다.
타이틀곡 《투 배드》는 그루브한 드럼 비트와 중독성 있는 훅이 매력적인 곡이다. 리드미컬한 지드래곤의 래핑과 앤더슨 팩의 세련된 보컬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이 곡은 발매 1시간 만에 멜론, 지니, 벅스, 바이브 등 국내 주요 음원차트 실시간 1위에 오른 데 이어 만 하루가 채 되기도 전에 멜론과 벅스 일간 차트 1위를 꿰찼다.
《투 배드》는 발매된 지 열흘 넘게 멜론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고, 지난 연말부터 올 초까지 차트 1위 롱런을 이어가던 선공개곡 《홈 스위트 홈》도 2위에 안착해 쌍끌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수록곡들도 차트 줄 세우기에 성공하며 ‘차트 이터’의 면모를 뽐냈다.
지드래곤이 선택한 ‘초인’이라는 테마는 철학적 의미보다는 음악적 초월 의지에 가깝다. 30대의 시작점에 내놓은 2017년 6월 미니앨범 《권지용》을 끝으로 2018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군 복무를 위해 잠시 음악활동을 내려놓은 그는 2022년 4월 빅뱅 《봄여름가을겨울》로 5년 만에 자작곡을 세상에 꺼내놓으며 여전한 감각을 확인시켰다. 이후 짧지 않은 공백을 이어가며 음악적 탐구를 이어갔던 그는 ‘위버맨쉬’를 통해 비로소 그 진가를 입증해 냈다.
다만 8곡이 각기 강한 개성과 분위기를 지녀 ‘위버맨쉬’라는 타이틀 아래서의 유기성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면이 있다. 또 언어유희 혹은 펀치 라임을 활용한 가사에서 재치가 느껴진다는 호평도 있지만 올드하다는 상반된 평가도 나온다. 음악 자체에 대해선 자신을 향한 높은 기대 수준도 어느 정도 만족시킨다는 평이 상대적으로 다수다.
지드래곤은 긴 공백을 딛고 돌아오며 선보이는 첫 작품이니만큼 지나치게 실험적이거나 모험적 성격이 강한 시도를 하기보다는, 대중 친화적 음악을 추구하면서도 국장을 넘어 글로벌 팝 시장까지 겨냥하는 측면에서의 음악적 확장을 이뤄냈다. 그런 의미에서 초인을 꿈꾸는 지드래곤의 행보에서 ‘위버맨쉬’는 종착점이 아닌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왜 여전히 ‘지드래곤’인가
지드래곤은 1988년생으로 올해 37세다. 2006년 8월 5인조 그룹 빅뱅으로 대중 앞에 나섰으니 올해 데뷔 19년을 맞은 중견 가수이자 고참 아이돌 가수다. 아이돌 음악 주요 소비층으로 일컬어지는 ‘1020세대’에게는 큰오빠 혹은 막냇삼촌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그럼에도 그가 현역 ‘K팝 킹’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는 그룹으로도 솔로로도 언제나 톱이었다. 빅뱅은 수없이 많은 히트곡으로 사랑받은 2세대 대표 보이그룹이다. 힙합 기반의 확고한 팀 컬러에 대중성을 가미한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팬덤뿐 아니라 대중의 지지도 막강한 ‘국민그룹’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또 솔로로도 컴백할 때마다 강렬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지드래곤은 K팝 아이돌이 갖고 있었던 ‘기성품’ 이미지를 벗어나 아티스트로서의 모습을 보인 가수”라며 “그간 활동이 거의 없다가 최근 다시 컴백하면서 반응과 기대감이 폭발하고 있기에 ‘K팝 왕의 귀환’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있다”고 지드래곤에 대한 리스너들 사이의 폭발적 반응을 분석했다.
임희윤 대중음악 평론가 역시 지드래곤의 데뷔 시점엔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던 ‘프로듀싱 아이돌’로서의 존재감을 언급했다. 임 평론가는 “지드래곤은 빅뱅 시절부터 작사, 작곡을 직접 하고 랩메이킹을 직접 하는 멤버로 존재감이 뚜렷했는데, 대중적이면서도 동시에 독특한 멜로디 메이킹, 랩 메이킹 능력으로 데뷔 초부터 K팝 팬들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각인됐다. 솔로 활동으로도 독특한 자기 세계를 음악적으로 표현했는데 지드래곤 특유의 배짱이나 조금은 광인 같은 모습이 곡과 잘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임 평론가는 특히 지드래곤 솔로곡 중 《무제》에 대한 리스너들의 지지를 언급하며 보컬리스트 측면의 매력에도 주목했다. 임 평론가는 “지드래곤 하면 독특한 패션과 악동 같은 이미지, 강렬한 댄스곡이 가장 먼저 연상되지만, 역설적으로 기존 발표곡 중 음원 플랫폼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은 건 피아노 발라드 《무제》”라며 “음색이나 곡 해석력, 멜로디 메이킹 능력이, 비단 시각적 부분뿐 아니라 청각적 부분에서도 명징하게 드러나며 대중이 지드래곤이라는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얘기해 주는 듯하다”고 전했다.
‘위버맨쉬’로 성공적 귀환을 알린 지드래곤은 세 번째 솔로 월드투어 ‘지드래곤 2025 월드투어 위버맨쉬’를 통해 세계 각국 팬들을 만난다. 이번 공연은 2017년 진행된 두 번째 월드투어 ‘ACT III: M.O.T.T.E’ 이후 8년 만으로 3월29일부터 이틀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선보이는 한국 공연을 시작으로 세계 각지로 이어진다. 앞선 두 번째 솔로 투어로 4개월 동안 총 36회 공연을 펼쳐 65만4000명의 관객을 동원한 지드래곤은 이번 투어를 통해 또 한번 ‘K팝 킹’의 위용을 보여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