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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가요 헌정 공연 나서는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

‘엘레지의 여왕’ 가수 이미자(84)가 은퇴한다. 데뷔 66년 만이다. ‘가왕’ 나훈아에 이어 가요계 굵직한 대선배들이 무대를 연이어 떠나게 된 것이다. 나훈아는 지난해 돌연 은퇴를 선언한 후 지난 1월 전국투어 서울 공연으로 팬들과 작별했다.

이미자는 4월26~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이미자 전통가요 헌정 공연, 맥(脈)을 이음’을 개최한다. 가수 주현미·조항조 등 후배들이 함께 나서는 이번 공연은 후배들에게 전통가요를 물려주며 대를 이을 수 있는 자리라고 판단해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자 콘서트에 후배 가수들이 게스트로 나서는 것도 이례적이다. 후배들은 이미자 대표곡 《동백 아가씨》 《여자의 일생》 등을 함께 부른다.

이미자는 3월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스탠포드호텔 서울에서 콘서트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미자는 그 자리에서 “은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드릴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데뷔 66년 만에 처음 은퇴를 언급했다. 해당 공연을 끝으로 더 이상의 공연이나 음악 녹음은 없고, 다만 후배들에게 조언해야 할 자리가 생긴다면 방송, 인터뷰 등에 응하겠다고 했다. 이미자는 그간 은퇴 시기에 대해 누누이 “은퇴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왔다. 자신을 찾는 팬이 없어지면 자연스럽게 은퇴가 되는 것이라는 뜻을 내비쳐 왔다.

이미자의 마지막 공연 장소는 의미가 깊은 세종문화회관이다. 1989년 데뷔 30주년을 맞아 대중 가수 최초로 이 무대에 섰기 때문이다. 당시 이미자가 세종문화회관을 대관한 것은 신문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 다뤄졌을 만큼 화제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중가요에 대한 평가절하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자는 포기하지 않고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고건 전 총리를 찾아가 설득했고, 결국 세종문화회관 공연이 성사됐다. 당시 이미자의 공연에는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등 4당 총재가 모두 부부 동반으로 참석할 정도로 화제였다. 이후 40주년, 45주년, 50주년, 55주년, 60주년까지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랐다. 이미자는 “세종문화회관 자체가 애착이 간다. 영원히 기념으로 남을 무대”라고 소감을 전했다.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 이미자는 《동백 아가씨》 《여자의 일생》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 《아씨》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음반 500여 장을 발매하며 66년간 전통가요의 뿌리를 지켜왔다. 애절하고 깊은 목소리로 6·25 전쟁 이후 우리 국민의 애환을 달래온 대표적인 국민가수다. 2023년 대중음악인 최초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이미자 콘서트 포스터
이미자 콘서트 포스터

공연을 개최하는 소감부터 듣고 싶다.

“노래한 지 66년째 되는 해인데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이다. 제가 고집하는 전통가요의 맥을 물려주고 이어줄 수 있는 후배들과 함께 공연한다는 것을 발표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기쁘다.”

후배들과 콘서트를 열게 된 계기는.

“우리 전통가요는 시대의 흐름을 대변해 주는 노래라고 자부한다. 우리가 어려웠을 때 불렀던 이 노래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노래들이 사라지는 게 너무나 안타까워서 많이 힘들었다. 그 시점에 이 공연이 이야기됐다. 든든한 후배들을 고르고 골라서 제 전통가요의 맥을 대물림해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후배들 덕분에 이을 기회가 와서 마무리를 충분히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전통가요라는 외길을 걸어왔다.

“《동백 아가씨》가 33주 연속 1위를 했음에도 질 낮은 노래라며 소외받은 기억도 있다. 서구풍의 노래를 부르면 상류층이고 전통가요는 하류층이라는 말에 소외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전통가요를 부르는 사람은 충분히 다른 장르도 소화할 수 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우리 전통가요는 자식들을 배우게 하기 위해 부모들이 월남으로, 독일로 다니며 애쓰던 시절에 울고 웃고 위로받으며 부르던 노래다. 시대의 흐름을 대변해 주는 노래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나 역시 그 자부심으로 지금까지 가수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전통가요의 역사는 곧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에 겪은 설움, 6·25라는 고난 등을 겪으면서 우리 가요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시대의 변화를 충분히 알려주고 퍼지게 했다. 대중가요의 역할은 음악을 통해 위로하고 위로받으면서 애환을 같이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 노래들이 영원히 잊히지 않고, 위로해 줬던 것들, 그것이 알맹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공연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

“‘단을 내리는 것’(은퇴 선언)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은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마지막이라는 말을 확실히 할 수 있는 때다. 그동안 ‘노래할 수 없을 때 조용히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은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은퇴라는 말 대신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말은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가수로서 마지막 공연인 셈인가.

“이번 공연이 마지막 공연이다. 앞으로 레코드 취입을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을 내리지 않는 이유는 전통가요의 맥을 잇기 위해 조언이라도 해줄 수 있는 자리나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노래로서는 이번 공연이 정말 마지막이다.”

후배 가수들과 함께 공연을 한다(이 자리에는 가수 주현미, 조항조가 동석했다. 두 사람은 이미자가 공식적으로 ‘후계자’라 점찍은 후배다).

“이렇게 든든한 후배들을 제가 고르고 골라서 전통가요의 맥을 대물림해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기에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행복함 속에 이 공연을 열심히 준비했다.”

 

이미자와 공연을 같이 꾸미게 된 주현미는 “맥을 잇는 후배로 절 지목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막중한 임무를 주신 거라 생각한다. 선배님의 지목을 받았다는 게 큰 영광이면서도 어깨가 무거워지는 일”이라고 했다. 또 “전통가요가 서민들에게 얼마나 따뜻한 위로와 기쁨이었는지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공연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항조 역시 “인생의 중요한 한 페이지가 되지 않을까 싶다”며 “노래에도 예의가 있다. 예의를 갖추고 과하지 않게 정석대로 불러주는 선생님의 교본 같은 노래의 맥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후배 가수나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기뻤을 때나 슬펐을 때 기억에 남는 곡이 가요라고 생각한다. 후배들한테 박자를 바꿔 부르지 말고 정석대로 부르라고 말해 주고 싶다. 또 가사 전달이 정확해야 한다. 가사에 슬픔과 기쁨이 있기 때문에 표현이 정확해야 가슴에 와닿는 노래를 들려드릴 수 있다. 그것이 우리 전통가요의 맥이다. 이걸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이 생기고, 물려줄 기회와 무대가 마련돼서 난 66년 활동에 아무 여한이 없는 행복한 가수다. 많은 분이 ‘한국의 전통가요의 맥을 이어간 가수’라고 생각해 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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