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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테러·저항권·킬링필드’ 등 헌재 판결 앞두고 책임질 수 없는 말들 쏟아져
윤석열·이재명 “승복하겠다” 미리 밝히길…정치인보다 국민 역할이 더 중요

한국판 킬링필드, 내전(內戰), 국민저항권…. 헌재의 최종 판결이 임박하자 위험천만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대로 가면 어떤 판결이 나더라도 2021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미국 트럼트 지지자들의 의사당 점거 사태나 얼마 전 서부지원 난동 사태를 능가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삭발, 단식, 천막당사, 테러 위협…. 이미 심리적 내전 상태를 뛰어넘어 물리적 내란 상태로 치닫고 있는 ‘헌재발(發) 후폭풍’을 막거나 최소화하려면, 헌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양측이 승복해야 한다. 이게 가능할까.

최근 탄핵 찬반 목소리와 움직임을 보면, 너도나도 ‘헌재 불복 선언’을 하는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1월1일 정초에 자필 서명한 옥중 편지를 통해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고, 그의 법률대리인인 석동현 변호사는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8년 전 박근혜 탄핵 때와는 달리 분노한 보수우파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이라며 ‘거의 내전 상황’이 될 것임을 경고했다. 보수 집회 때마다 기염을 토하고 있는 전한길 한국사 강사는 3월12일 “탄핵 각하를 100% 확신한다”면서 “국민저항권은 국민주권이 중대한 도전을 받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서 실력으로 저항하는 것”이라고 외쳤다. 이날 나경원, 추경호, 강승규, 김장겸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에서 ‘국민저항권 긴급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세미나 제목 자체가 ‘불복’을 암시하고 있다. 여전히 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 통합과 국정 안정에 앞장서야 할 윤 대통령도 3월8일 석방될 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대야 투쟁’을 독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세등등한 보수진영은 탄핵 인용을 도저히 인정하기 어려운 근거와 명분이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공수처의 수사권 논란과 이재명의 탄핵 중독, 문형배 등 우리법연구회의 좌파 카르텔 작동 등이 대표적이다.

3월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3월1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 한국 상황 예의주시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3월말 공직선거법 2심 선고를 앞두고 초조해진 이재명 대표는 탄핵 관철을 위한 총동원령을 내린 가운데 3월12일 경복궁 인근 민주당 천막 농성장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 탄핵이 기각되어 직무 복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국민을 계몽시키기 위해 계엄을 선포하는 것을 용인하자는 것인가. 그게 가당키나 한가.”

민주당 여성 의원의 삭발식, 연일 여의도에서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소속 의원과 당직자 500여 명의 비장한 도보 행진, HID(북파공작원)의 이재명 암살설 제보에 따른 신변 보호 요청 등에서 민주당과 이 대표의 결사항전 의지가 읽힌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은 하늘이 두 쪽 나도 탄핵 기각을 인정하기 어려운 근거와 명분들이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흠결이 많은 비상계엄 선포, 군인들의 국회와 선관위 침투, 정치인 체포 지시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김용현 등 내란 주요 종사자들이 몽땅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에서 내란 우두머리가 석방되고 급기야 직무에 복귀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런데 막상 헌재가 파면이나 각하 결정을 내리면, 준(準)전시 상황이나 내전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현역 국회의원이 유력 방송에 출연해 꽤 구체적인 ‘전쟁 시나리오’를 제시해 놀라웠다. “탄핵이 기각되면 나라가 망한다. 불의에 항거하는 수백만 시민들이 거리로 나올 것이다. 경찰력으로 막을 수가 없다. 결국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또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계엄군 안에서도 반란군이 생겨서, 계엄군과 반란군 및 시민들 간에 내전 상태가 된다. 그러면 우리는 4대 강국의 이권이 충돌하는 곳이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이 개입하고 북한도 있다. 따라서 헌재의 탄핵 기각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한때 소문으로 나돌던 2차, 3차 계엄과 계엄군 간 충돌, 시민항쟁, 미국-중국-북한의 개입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이다. 국민의힘 내에서 계엄 반대-탄핵 찬성에 가장 앞장섰던 김상욱 의원의 걱정이다.

해외에서도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AP통신,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유력 외신들이 ‘헌재 이후의 상황’을 심층 취재하는가 하면, 무디스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프랑스에 이어 한국의 등급을 낮출 기미를 보이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이창용 한은 총재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빠른 경제 발전과 함께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의 나라로 세계 사람들이 선망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념 전쟁’이 벌어지면, 지금까지 애써 쌓아온 산업화-민주화, 선진화는 물론 K컬처와 국격까지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판결 후유증 최소화하고 빨리 안정 찾아야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계엄·탄핵 정국의 두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노예 해방 문제를 놓고 4년 동안 1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던 19세기 미국의 남북전쟁 수습 사례가 떠오른다. 링컨 대통령이 지휘하는 북군은 치열한 전투 끝에 남군을 물리쳤지만, 승리를 축하하는 일체의 행사를 금지시켰으며, 패장인 로버트 리 장군을 깍듯이 존중했다. 덕분에 미국은 전쟁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단기간에 국론 통합과 연방정부의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 북군의 총사령관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은 포용력과 화합의 리더십을 발휘한 공로를 높이 평가받아 18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정치인보다 국민의 역할이 더 중요해 보인다. 헌재 결과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냉철하게 자제심을 발휘해 헌재 결정에 승복함으로써 내전적 상처를 치유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해방 이후 80여 년간 참으로 힘겹게 일구어온 선진국 대한민국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바라건대, 여야 정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승복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면 좋겠다. 전략적으로도 헌재 승복을 먼저 그리고 명확하게 공개 선언하는 쪽이 국민적 지지와 중도 확장 차원에서도 유리할 것이다. 만약 현재에서 최종 판결이 났는데도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은 다수 국민과 중도층으로부터 등돌림을 당해 다음 선거에서 불리해진다는 점을 깊이 염두에 두기 바란다. 대한민국 최고의 헌법기관인 헌재의 최종 결정에 불복하는 것이야말로 체제 부정이요, 국민 무시 행위가 아니겠는가.

끝으로 화합과 통합의 아이콘인 링컨 대통령의 어록을 소개한다. “나는 항상 가혹한 정의보다 자비가 더 큰 열매를 맺는다고 믿는다” “무력은 모든 것을 정복하지만 그 승리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 누구도 남을 지배할 만큼 훌륭하지 않다. 적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계엄·탄핵 정국에서 ‘진정한 승리’를 원한다면, 요즘 우리 현실에 들어맞는 링컨의 조언을 조용히 음미해 보기 바란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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