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고통스러운 것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이다. 극 중의 불확실성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가 되지만 현실세계의 불확실성은 불안과 두려움, 각 경우에 대비한 행동 및 소모 비용으로 사람을 초죽음 상태로 내몬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100일을 넘긴 한국 대통령의 탄핵 사건을 흥미진진한 드라마로 소비하겠지만 당사자인 한국인 수천만 명은 살이 마르고 피가 거꾸로 솟는 인생의 고통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즉, 직의 파면이냐 직무복귀냐 결정을 질질 끄는 것은 유감이다. 이러다가 문형배 소장권한대행과 이미선 재판관 두 사람의 퇴임날인 4월18일을 넘기지 않으리란 법도 없겠다. 나라는 국정 마비를 넘어 국가 불구가 될 것이다. 문 대행과 헌법재판관들이 역사의 죄인으로 낙인찍힐 뿐 아니라 앞으로 개헌 논의를 할 경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헌재를 없애는 게 낫다는 국민적 합의가 도출될지 모를 일이다.
불확실성을 키우는 문형배의 헌법재판소
헌재는 왜 3월14일, 21일 등 유력하다던 탄핵심판 날짜들을 자꾸 놓치고 뒤로 미루는 것일까. 현재로선 ‘윤석열 파면’ 입장으로 알려진 문형배 대행이 8대0 만장일치 결론을 유도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2~4인이 흔쾌히 따르지 않아 이들을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설명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2~4인 중 2인은 ‘윤석열 직무복귀’ 입장이 상대적으로 강하고 1~2인은 ‘한덕수 탄핵 선고부터 해야’와 같이 절차적·기술적 입장이 상대적으로 강했다고 한다. 결국, 문 대행은 만장일치는 고사하고 대통령 파면에 필요한 6명을 확보하지 못해 최종 평결을 3월28일쯤으로 늦췄다는 얘기. 동시에 직무복귀 입장인 재판관이 2명에서 3~4명까지 늘어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물론 새로운 변수가 발생해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때처럼 8대0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적으로 주목되는 것은 3월28일쯤 예상되는 윤 대통령 탄핵 판결과 3월26일 있을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2심 선고가 겹친다는 점. 이재명 대표는 1심에서 이미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기에 2심에서도 비슷한 판결이 내려지면 대선 출마에 타격이 크다. 조기 대선 전에 대법원 3심 판결이 내려지기라도 하면 출마 자격 상실이요, 조기 대선에 출마한다 해도 ‘2심 유죄 확정자’에 대한 유권자의 거부감이 상당할 것 같기 때문이다.
윤석열·이재명의 선 넘는 정치, 국민이 막을 수밖에
대통령의 파면 문제와 거대 야당 대표의 유죄 여부가 하루이틀 새 연쇄적으로 결론 나면 쓰나미에 쓰나미가 부딪히듯 정국은 격랑에 휩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이재명이 유죄 선고를 받고 윤석열이 파면되는 경우 양대 진영 세력이 어떤 행동으로 나올지 가늠키 어렵다. 반대로 이 대표가 무죄 나고 윤 대통령도 직무복귀 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어떤 경우든 한국은 정세의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불확실성의 안개가 짙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제 정치인보다 국민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정치인은 국가의 불확실성과 자신의 생존이나 권력 사이에 양자택일적 상황에 처하게 되면 거의 항상 후자에 선다는 것을. 희생정신은 그들 생활에서 희귀하다. 8전8패 탄핵 실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최상목 권한대행 탄핵 카드를 꺼내든 이 대표나 국민 통합보다 체제 전쟁에 열심인 윤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국민 역할론이 나온다. 진영 속 국민이라 할지라도 자기편 지도자의 선 넘는 정치에 대해선 “아니다”라고 소리쳐야 하지 않을까. 두 사람은 링컨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말에 귀 기울였으면 한다. “적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