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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통한 티켓 사기 기승…정해진 매뉴얼대로 입금 유도, CS 업체로 위장도
보이스피싱과 달리 지급정지 안 돼…피해자들 “정책으로 국가가 보호해야”

#중학생 임소정양(가명)은 아이돌그룹 NCT 열성팬, ‘시즈니’다. 최애 멤버는 도영. 임양은 지난해 말 도영의 단독 콘서트를 오매불망 기다렸지만 티케팅에 실패하고 말았다. 콘서트에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할 무렵, 눈에 띈 것이 엑스(X·옛 트위터)에 올라온 티켓 양도 글이었다. 판매자는 임양의 양도 문의에 다정했다고 한다. 양도 티켓 사용을 위한 디테일한 사안을 자세히 알려주고, 실물 티켓 사진도 찍어 인증했다. ‘혹시 사기가 아니냐’는 임양의 걱정스러운 말에 ‘사람 모함하지 말라’는 식으로 나무라기까지 했다. 하지만 티켓값 18만원을 입금하자 태도가 돌변해 다음 날 임양 계정을 차단하고 사라졌다.

학생 신분으로는 큰돈을 잃게 된 임양은 부모님에게 말도 못 한 채 경찰에 신고했지만, 1년여 만에 돌아온 대답은 성명불상인 피의자를 찾지 못해 ‘수사 중지’를 한다는 것. 임양은 “저처럼 사기를 당한 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며 “사기꾼도 잘못됐지만, 피해자가 계속 늘어나는데 돈을 되돌려받는 사람은 별로 없는 이 사회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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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간 소액 사기에서 조직적 피싱 범죄로 진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플랫폼을 통한 인터넷 사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사기 방지 플랫폼 더치트의 발표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접수된 인터넷 사기 피해 건수는 17만8833건. 이 가운데 ‘티켓·상품권’이 3만1053건으로 1위를 차지했다. 피해자 연령대를 보면 20대가 36.16%로 가장 많았고, 10대도 19.74%를 차지해 10대·20대가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이들 세대가 스마트폰 앱 활용과 온라인 송금 등에 익숙한 만큼 인터넷 사기 피해 위험에도 쉽게 노출된 셈이다.

문제는 몇 년 새 인터넷 사기가 단순 개인 소행이 아닌 조직적·구조적 범죄단체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특히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한 인터넷 사기 조직이 최소 100억원이 넘는 피해를 입힌 사례를 포착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초 개설된 한 카카오톡 피해자 모임방의 경우 올해 8월3일 기준 총 1만2500여 명이 모였고, 피해 금액은 101억원을 넘어섰다. 같은 사기를 당했으나 피해자방에 참여하지 않은 이도 상당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모임방 최초 개설자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던 30대 신영원씨(가명). 신씨는 “지난해 지인 부탁으로 오타니 쇼헤이가 출전하는 MLB 티켓을 사려다가 100만원이 넘는 사기를 당했다. 같은 피해자들끼리 경찰 수사나 소송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솔직히 몰랐다”며 “(이들 조직은) SNS 계정 여러 개를 사용하며 정해진 매뉴얼이 있는 듯이 대화를 유도해 온갖 사기 범행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씨는 하나의 범죄조직으로 판단한 이유에 대해 “범행에 사용한 계좌들끼리 접점이 있는 경우에만 인증을 거쳐 모임방에 초청했다. 이들은 주민등록증, 전화번호, 인증 사진 등을 함께 돌려 썼다. 무엇보다 피해자와 연락이 닿은 계좌주들 대부분이 대출 사기에 연루돼 계좌 정보를 넘겨줬다는 공통점이 있어 하나의 조직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들 사기 조직의 교묘한 수법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다. 지방에 거주하는 20대 직장인 윤예진씨(가명) 피해 사례가 대표적이다. 윤씨는 지난 6월 아이돌그룹 세븐틴 콘서트 티케팅에 실패한 뒤, X에서 양도를 받으려다 이들 조직의 범행에 걸려들고 말았다. 이들 조직은 윤씨에게 “3자 사기 문제가 많아 보내실 때 ‘본인’ 계정명으로 부탁한다”고 요청한 뒤, 윤씨가 자신의 이름으로 송금하자 “본인 ‘계정명’ 확인이 안 된다. 입금자명 불일치로 ‘미확인 입금’ 처리된 상태다” “1차, 2차 모두 오입금돼 통합 환불로 진행해야 한다”면서 계속 말을 바꿔가며 추가 입금을 유도했다.

인터넷 사기 조직이 반복적으로 입금을 유도하며 보낸 SNS 메시지 캡처본 ⓒ피해자 제공
인터넷 사기 조직이 반복적으로 입금을 유도하며 보낸 SNS 메시지 캡처본 ⓒ피해자 제공

“수법 모르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문제”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윤씨가 환불을 요구하자 빠른 해결을 위해 상위 티케팅 CS 업체로 연결해 주겠다며 텔레그램 접속을 유도한 뒤 “반복된 오입금으로 이상 거래(악성 송금)로 분류됐다” “시스템상 ‘해외 IP 송금’으로 인식된다”며 끊임없이 책임을 전가하면서 입금을 재촉하고 “현금이 부족하면 대출을 통해서라도 오류를 빠르게 푸는 것이 좋다”고 강권하기도 했다.

윤씨는 결국 700만원 가까이 입금하고 나서야 사기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윤씨는 “물론 제 부주의도 있겠지만 수법을 모르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저도 나중에야 이게 거대한 조직범죄의 정해진 패턴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상황을 잘 모르는 경찰에서 얼마나 빨리 해결해 줄지 모르겠다. 실제 티켓 사기꾼과 계좌주가 달라 형사 배상명령은 불가능하고 민사로 해결해야 한다는데, 이런 과정에서 결국 다들 포기하지 않나 싶다”고 하소연했다.

이들 조직은 SNS에서만 활동하는 것도 아니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강찬미씨(가명)는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서 명품 목걸이를 시세보다 싸게 사려다가 이들 조직을 만나 120만원을 잃었다. 강씨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급하게 파는 것이라며 입금을 요구하더니, 돈을 받자마자 바로 탈퇴해 버렸다”며 “똑같은 피해를 막기 위한 민원 제기를 위해 경찰서를 방문했지만 ‘그런 일(중고거래 사기)은 비일비재하다. 나도 당한 적 있다’는 식의 말을 듣고 더 크게 좌절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시사저널 취재에 응한 피해자들은 이들 조직이 보이스피싱 범죄단체와 다를 것 없는 구조를 갖추고 활동하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해외에 거점을 둔 총책의 기획 아래 기획책들이 각 플랫폼에 분산 배치돼 매뉴얼대로 사기 행각을 벌이고, 국내에서는 돈을 받을 계좌 수급을 위한 현금수거책이 별도 활동한다는 것이다. 현금수거책들은 대개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며 계좌주에게 접근한 뒤, 계좌에 돈을 넣었다 빼는 등 실적을 쌓기만 하면 이자를 낮출 수 있다는 식으로 유인한다. 일부 계좌주는 사기에 이용되는 것을 알고도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 불법 통장대여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보이스피싱 처럼 지급정지 요구에 손사래 치는 경찰·은행

결국 구조화된 인터넷 사기 근절을 위해서는 지급정지 조치를 보이스피싱 대응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피해자들은 항변한다. 보이스피싱의 경우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피해를 인지하는 즉시 은행에 지급정지 조치를 할 수 있다. 반면 인터넷을 통해 재화(물건)나 용역의 공급 등을 가장한 사기 행위는 해당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우선 경찰 신고 등으로 사기 피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한 다음 은행에 피해구제신청을 해야 한다. 이런 절차를 거치는 동안 피해 금액은 여러 계좌를 옮겨 다니다 암호화폐를 통해 추적이 불가능한 제3국으로 빠져나가는 실정이다. 경찰이 발 빠르게 계좌주를 찾아낸다고 해도 이미 돈이 모두 빠져나간 뒤라 결국 피해자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계좌주만 남아 길고 지루한 법정 공방을 해야 하는 셈이다.

번개장터에서 그래픽카드를 사려다가 135만원을 뜯겼다는 최명우씨(가명)는 “사기를 당한 후 은행에 가장 먼저 피해금 반환 신청을 했으나 받아주지 않았다. 피해금이 해당 계좌에 그대로 동결된 채로 지급정지 중임에도 환급이 안 된다고 했다”며 “민사소송을 통해 돈을 계좌주로부터 돌려받는 데 1년이 걸렸다. 피해자 중에는 소송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 많고, 법원에 가길 두려워하는 학생도 많아 피해 회복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들의 울분이 경찰과 은행으로 향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경찰이 조직화된 인터넷 사기 양태를 살피지 않고 산발적으로 수사하면서 사기 윗선으로 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피해자방에는 “신고한 지 1년 넘었는데 아직 수사 중이다” “왜 이렇게 수사가 안 되느냐고 물어보면 담당하는 사건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는 푸념이 가득하다.

이와 관련해 경찰청 경제범죄수사과 관계자는 “인터넷 사기 조직이 범죄조직화되는 경향이 뚜렷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조직은 비단 물품 사기뿐만 아니라 보이스피싱, 리딩방, 로맨스 스캠 등 전 분야에 걸쳐 활동하고 있고, 주로 캄보디아나 중국에 콜센터를 두고 운영하는 실정”이라며 “아무래도 국내 형사사법절차가 미치지 않는 곳이다 보니 정상적인 법령과 표준규약을 지키면서 수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 현지에서 붙잡더라도 해당 국가 법령 위반이나 불법체류 문제 등이 해결된 다음에나 송환 가능해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의 경우 매일 새로운 계좌가 인터넷 사기에 이용되고 있음에도 관련법이 없다며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 피해자들이 자체 취합한 리스트를 보면, 지난 2년간 사용된 계좌 수는 4702개, 명의자는 868명에 달한다. 일부 피해자는 특정 은행의 적금 계좌나 모임 통장 등이 계좌 사기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며 안전장치가 미흡하다는 불만도 쏟아냈다.

은행들은 이상거래탐지(FDS), 사기계좌 알림, 신분증 도용 방지 기술 도입 등 인터넷 사기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일부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개인 간 중고거래 사기의 경우 은행에서 곧바로 지급정지를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법령도 미비하고, 사실 정상적 거래였는데도 통장을 못 쓰도록 신고한다거나 악용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했다. 한 인터넷은행 관계자 역시 “24시간 이상 거래 모니터링 등을 통해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들을 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대가를 받고 계좌를 빌려주는 사람들은 찾아내기 어렵다. 이상 거래가 의심돼 연락했을 때 정상적인 거래라고 말하면 믿을 수밖에 없다. 은행이 수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했다.

피해자방 개설자인 신씨는 “소액 사기가 이제 조직범죄로 진화했기 때문에 단지 개인의 책임이 아닌 정책을 통해 국가에서 보호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보이스피싱처럼 지급정지가 바로 되게끔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아무래도 빠른 지급정지인데,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국회에서도 여러 법안이 발의됐으나 통신과 금융은 국민 생활과 밀접한 영역이고, 신중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측면에서 부처 간에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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