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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부부와 윤미향·최강욱 등 포함…국민 공감 못 받고 지지율도 하락 추세
법원 재판 뒤집고 법적 통제도 불가능한 절대군주적 권한 행사는 신중하게 해야

이재명 정부가 광복절을 맞아 행사한 첫 사면 대상자에 조국 전 대표 부부, 윤미향 전 의원, 최강욱 전 의원 등이 포함되면서 찬반 논란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급기야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마저 상당한 폭으로 떨어졌다. 그만큼 이번 사면에 대해 국민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면을 둘러싼 논란이 날카롭고 뜨거운 것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이번 사면은 이재명 정부의 국정철학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사면의 경우에는 서로 충돌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어느 쪽을 우선하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둘째,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국정 운영의 일차적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실용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으며, 실용주의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우선되어야 할 중요한 가치들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확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사면에 대한 국민의 공감을 어떻게 얻어내는지, 아니면 국민적 공감 없이 밀어붙일 것인지도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은 국민을 이기려는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합리적 요구에는 질 줄 아는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대해 국민이 더욱 민감한 것은 그것이 제왕적 대통령의 상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면권의 뿌리가 이른바 군주의 대권의 하나로서 법적 통제 밖에 있었던 군주의 은사권(恩赦權)에 있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정치인, 고위 공직자, 재벌 총수 등을 대상으로 한 사면은 법 앞의 평등을 깨뜨리며, 일반 국민과는 다른 특권계층을 만드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8월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8·15 광복절 특별사면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8월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8·15 광복절 특별사면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면권 행사, 떨치기 어려운 유혹

그로 인해 사면권이 행사될 때마다 국민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떠올린다. 이 말은 곧 사면에 대한 국민의 공감이 매우 부족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화 이후의 역대 사면을 돌이켜보면 수십만 명, 혹은 수백만 명을 일시에 특별사면하는 것에 대해 국민의 불신이 작지 않았다. 교통법규 위반자의 벌점을 사면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교통법규를 충실히 지킨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불법과 비리가 법원의 재판을 통해 확인된 정치인 등이 사면된다면 한편으로는 “이럴 거면 왜 재판이 필요하냐”는 비판이, 다른 한편으로는 “특권계층에 대해서만 사면이 적용된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동안 대규모 사면의 근거로 들었던 것이 국민 통합이었다. 그런데 결과를 놓고 보면, 사면으로 국민 통합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갈등과 분열이 오히려 커진 측면이 크다. 이번 사면으로 인해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당히 추락한 사실도 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군주국가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는 사면권이 근대 시민혁명으로 군주국가를 무너뜨린 이후에도 계속 인정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민주적 법치국가라 하더라도 사법부의 판단이 항상 옳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잘못된 판결에 대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과거 사법살인으로 비판받았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대법원의 재심판결을 통해 무죄가 인정되었던 조봉암의 사형판결이나 인혁당 관련자들의 사형판결과 같은 잘못된 판결이 있으면 사면권 행사로 이를 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법적 판단은 잘못되지 않았지만, 중대한 국익을 위해 판결의 집행을 배제할 필요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의 사례로는 1987년 KAL기 폭파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이었던 김현희에 대한 사면을 들 수 있다. 대규모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형판결을 내린 것은 정당하지만, 당시 KAL기 폭파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 아닌 남한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음모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김현희를 사형시키는 것은 증거인멸로 오해될 수 있으며, 국익을 위해서는 김현희가 살아서 당시의 진실을 증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러한 두 가지 사면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는 단 4건, 프랑스에서는 28건의 사면이 있었을 뿐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에서는 최근에 사면이 많아진 편이지만, 역대 사면 전체가 수백 건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사면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인 것이다.

 

사면 남발하면 누가 법 지키려 하겠나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미국에서도 최근 사면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면권이 강력한 힘이 있고, 그 힘을 행사하려는 유혹을 이기지 못한 대통령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법원의 재판을 뒤집는 사면은 이에 대한 법적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겹겹이 통제되고 있는 비상계엄 선포보다도) 절대군주의 권한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사면권을 행사함으로써 가까운 사람들을 형벌로부터 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에 대한 유혹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미국의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임기 만료 직전에 자신의 아들을 사면한 것도 그런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사면에서 이화영 등 이재명 대통령의 측근이 배제된 것도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는 이 대통령의 노력의 흔적일 것이다. 그러나 측근이 사면 대상에서 배제되었다고 해서, 국민이 사면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공감을 위해서는 사면이 꼭 필요한 이유가 납득될 수 있어야 한다.

민주화 초기에 비해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많이 줄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면권의 오남용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면은 법치에 대한 중대한 예외다. 사면권을 행사할 때는, 형벌을 면제받는 당사자들의 기쁨보다 일반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사면 사유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없을 경우에는, 사면은 그 사건에 그치지 않고, 법치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반복되는 사면으로 사법 절차에 따른 각종 제재가 유명무실하게 된다면 누가 그 절차를 존중하겠는가? 더욱이 정치인, 고위 공직자 등이 사면의 주된 대상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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