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여론’에도 李 결단한 배경은?…“친문·조국에 빚 청산” “정청래 견제” 해석 분분
입시 비리 조국·횡령 윤미향 사면 후폭풍…남은 판도라 상자는 ‘이화영의 폭로’
검찰 개혁의 순교자 혹은 비리를 저지른 권력자, 조국이 돌아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광복절을 맞아 첫 특별사면을 단행한 가운데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면죄부를 쥐고 정계에 복귀할 전망이다. 이번 사면 명단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횡령 등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던 윤미향 전 의원, 조국 전 대표 아들에게 허위 인턴 확인서를 써준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던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름을 올렸다. 반면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대북 송금 사건’으로 수감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정치권에선 이번 사면의 의미를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사면을 통해 ①조국 전 대표를 비롯한 친문(親문재인)계에 진 정치적 빚을 청산하고 ②자신의 측근은 사면 명단에서 제외함으로써 여권의 분열은 봉합하고, 범여권 연합은 키우려 했다는 시각이 있다. 동시에 일각에선 ③지방선거를 앞두고 조 전 대표의 정치적 활로를 열어줌으로써 정청래 민주당 대표에게 기울어진 여권 권력의 균형추를 조정하려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다만 사면의 정치적 셈법이 부각될수록 정부가 내세운 국민 통합이라는 메시지가 희석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만약 역풍의 세기가 여권의 예상을 웃돌 경우 개혁 드라이브에도 급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부메랑 되어 돌아온 과거 尹 사면 비판
헌법 제79조에 근거한 특별사면은 ‘법의 예외’를 허용하는 강력한 권한이자,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대통령만의 특권이다. 그렇기에 ‘언제, 누구를, 왜 사면하고, 누구를 사면하지 않을지’, 이 결단은 곧 대통령의 의지이자 메시지로 읽힌다. 잘 쓰면 화해의 도구가 되지만, 잘못 쓰면 공정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정치적 역풍의 불씨가 된다.
통상 야당은 후자의 우려를 대변하곤 한다. ‘대선후보 이재명’도 그랬다. 그는 당대표 시절인 지난해 2월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을 특별사면하자 “유죄 확정이 되자마자 사면하면 사법제도가 왜 필요한가”라고 그 정당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그냥 유무죄 판단과 형 집행 여부도 대통령이 다 알아서 (판단)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반문한 뒤 “이런 것을 바로 군주국가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가 특별사면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사법권을 침해했다고 비판한 셈이다.
공교롭게도 이 비판은 부메랑이 돼 ‘대통령 이재명’에게 돌아왔다. 정부는 8월11일 정치인 및 주요 공직자 27명 등을 포함해 총 83만6687명에 대해 제80주년 광복절을 맞아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부부를 비롯해 최강욱·윤미향 전 민주당 의원,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등 여권 인사가 대거 이름을 올렸다.
대통령실은 “이재명 대통령이 사회적 결합과 대통합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거센 비판이 날아들었다. 특히 조 전 대표의 경우 형기가 1년 이상 남았다는 점, 윤 전 의원의 경우 ‘일본군 위안부 후원금 횡령’으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는 점에서 광복절 특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번 사면은 그야말로 조국 친위대 총사면”이라며 “결국 정권 교체 포상용 사면권 집행”이라고 주장했다. 이언주 민주당 최고위원도 “이번 사면을 위해 국민의힘 부패 사범까지 포함해 가며 할 일인지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국민 화합이라는 원래 취지와 달리 정치적 이해관계의 소산으로 비칠 수 있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사면 후폭풍이 커지면서 ‘국민 대통합’을 내세웠던 대통령실의 명분에도 금이 갔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특별사면·복권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이 대통령의 취임식 격인 ‘8·15 국민임명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대선후보 안 냈던 혁신당, ‘청구서’ 결제한 李
일각에선 야권의 반발이 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별사면은 본래 정치적 성격을 띠는 만큼, 이를 두고 ‘정치적 사면’이라고 비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보수 성향의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사면은 그 자체로 대통령의 정치적 행위”라며 “야당이 조국 전 대표 사면을 문제 삼지만 윤석열 정부 역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의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사면·복권하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결국 이번 사면에 대한 다양한 평가의 교집합은 ‘명단에 정치적 함의가 있다’는 것이다. 공통적으로 나오는 분석은 이 대통령이 그간 쌓인 ‘정치적 빚’을 임기 초에 청산했다는 것이다. 사면 명단에 오른 조국 전 대표를 비롯해 윤건영 의원, 백원우 전 의원,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등은 친문계로 분류된다. 진보진영의 신주류로 친명계가 부상하면서 친문계는 당내 입지도, 영향력도 줄어든 구주류로 분류된다. 즉 이들에게 남은 작은 반목의 불씨를 이번 사면을 통해 불식시킴으로써 정권을 지킬 우군의 세를 늘리려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조국혁신당의 경우 지난 대선 당시 후보조차 내지 않으며 민주당을 도왔다는 분석이 있는데, 이 대통령이 조 전 대표 사면으로 ‘청구서의 값’을 치렀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눈에 띄는 점은 이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 등은 사면 명단에서 제외했다는 점이다. 앞서 이 전 부지사는 6월11일 자기 페이스북에 “없는 것 탈탈 털려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며 ‘21대 대통령 취임 기념 특별사면복권 서명운동’ 링크를 올린 바 있다. 정치권에선 이를 두고 이 대통령을 향한 ‘셀프 구명 요구’라는 분석이 나왔으나, 이 대통령은 수용하지 않았다. 되레 송언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대통령실에 사면을 요청한 심학봉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홍문종 전 새누리당 의원, 정찬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명단에 올랐다. ‘측근 사면’ 논란을 피하기 위한 이 대통령의 고육지책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면이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견제하려는 이 대통령의 정무적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압도적 당심을 업고 당선된 정청래 대표의 ‘일극체제’를 견제하기 위해 이 대통령이 조국 전 대표를 사면하며 ‘제3의 명심 주자’를 세우려 한다는 추측이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8월11일 시사저널TV에 출연해 “이 대통령이 전당대회에 개입하지는 않았으나 박찬대 후보를 지지했다는 관측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정청래 대표가 당선됐다”며 “이 상황에서 정청래 대표를 중심으로 당이 지방선거를 치르게 됐으니, 외부에 적절한 견제 세력을 두기 위해 조국 전 대표를 사면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고 전했다.
‘셀프 구명’ 실패한 이화영, 입 열까 귀추 주목
정치권은 이번 사면이 가져올 후폭풍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3대 특검’과 국민의힘 내홍을 방파제 삼아 이번 사면을 단행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구속되고 국민의힘이 격한 내홍을 겪고 있어 이번 사면이 민심에 미칠 영향이 작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민주당의 한 원내 관계자는 “특검 수사로 지난 정권의 부패가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데 국민의힘은 여전히 ‘윤석열 어게인(again)’을 말하고 있다”며 “(사면을 포함해) 이 역풍의 세기를 키울 만한 다른 뉴스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강성’ 정청래 지도부 체제로 재편된 가운데 ‘이춘석 차명 주식거래 의혹’과 이번 사면 여파가 더해지면서 중도층의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사면이 발표되기도 전에 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취임 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해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8월11일 나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8월4~8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8월 1주 차 주간 집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56.5%로 전주 대비 6.8%포인트(p) 하락했다. 이는 이 대통령 취임 후 가장 큰 폭의 하락이다. 부정 평가는 38.2%로 전주보다 6.8%p 상승했다(무선 100% 자동응답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번 사면은 지난 대선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반윤(反윤석열)이라는 기치 아래 정권을 잡았으니 일단 여권의 분열부터 막아야 한다는 전략적 고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대통령도 일정 부분의 지지율 하락을 감내하고 결단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그 민심의 낙폭이 정부와 민주당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클 가능성이 있다. 특히 윤미향 전 의원의 경우 보수뿐 아니라 진보층에서도 반발이 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각에는 이번 사면의 숨은 변수가 ‘이화영의 입’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대통령이 연루 의혹을 받는 ‘대북 송금 사건’으로 수감 중인 이 전 부지사가 이번 사면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향후 상황에 따라 이 대통령에게 불리한 발언을 쏟아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여권 내부에서도 “사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폭로라는 형태로 맞불을 놓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조국 전 대표 사면이 연습 문제라면 이화영 전 부지사 사면은 고급 문제”라며 “이 전 부지사를 사면하면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면하지 않으면 그의 입이 열릴 수 있다. 이 문제가 이재명 정부 임기 내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