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미터가 8월1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2주 사이에 12%포인트 떨어진 51.1%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6·3 대선 때 이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 49.4%와 거의 일치한다. 두 보수 야당 후보의 합계 득표율도 49.4%였다. 반반으로 쫙 갈라진 민심은 새 대통령의 등장에도 꿈쩍 않고 그대로다.
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했던 ‘통합의 정치’는 어디로 갔나. “통합은 유능의 지표이며 분열은 무능의 결과”라 했던 그는 아직 자신의 유능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말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 당에 의존하거나 문재인·김어준 도움 받아야 할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두 달 반(10주 차) 때 기록했던 리얼미터 지지율은 74.6%였다. 이 대통령의 따끈했던 지지율은 비교적 빨리 식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 대통령은 지지율이 50% 밑창을 뚫고 40%대로 떨어져 고착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럴 경우 이 대통령은 ‘단독 통치’가 어려워진다. 당에 의존하거나 끌려다니는 정치, 문재인 전 대통령이나 김어준씨의 도움이 필요한 정치, 결국 권력의 중심이 주변 세력에 의해 흔들리는 정치를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
물론 여론조사 결과는 상황을 주도하는 대통령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곤 한다. 일희일비하거나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다만 기미가 보일 때 경계하는 건 중요하다. 미리 조심하면 나쁜 일을 막을 수 있다. 이제 이 대통령이 그동안 국정 흐름을 정밀하게 점검해 무엇이 지지율 급락을 초래했는지 따져볼 때가 되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가리고 일의 순서와 타이밍, 속도와 강약을 조절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일례를 들자면 이 대통령이 삼권분립을 해치고 형사사법의 근간을 허무는 민주당의 패키지 법안에 대해 “민감한 핵심 쟁점이 있다면 더 많은 공론화 작업으로, 더 많은 갑론을박이 벌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한 것은 잘했다고 본다. 정청래 당대표의 자기 진영에만 호소하는 일방적인 법안 처리 방식이 반대 진영뿐 아니라 중도층의 반감까지 사 이재명 정부 지지율을 깎아먹는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공론(公論)’은 이 대통령이 정 대표한테만 요구할 게 아니라 본인에게도 똑같이, 아니 대통령이기에 그 이상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조선 600년의 기틀을 세운 태종 이방원의 집권 1년 차 왕조실록엔 다음과 같은 발언이 있다.
“지금 안으로는 부왕에게 책망받고 밖으로는 여론이 흉흉하니,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해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공경하고 두려워할 뿐이다.”
자기편 사람들끼리 공론화는 권력 안정 못 시켜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군왕이었고 압도적 무력과 정치력으로 국내 저항 세력들을 평정했던 태종이 집권 1년 차 권력의 최정점에서 표현한 언어가 ‘책망’ ‘흉흉’ ‘공경’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그 절대 왕조 시대에도 현명하고 지속 가능한 권력은 여론을 두려워했다는 게 특별해 보인다.
실록을 더 살피면 태종은 일을 할 때 자기 생각을 먼저 밝히기보다 여러 신하가 각자 의견을 내도록 기회를 줬다. 그가 정치에서 공론을 만들어내는 일관된 방식이었다. 공론화는 결국 태종의 권력을 안정시켰다.
진짜 공론화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공평하게 얘기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의 공론화는 자기편 사람들끼리만 공론하는 것 같아 겉도는 느낌이다. 다른 편 사람들을 걸핏하면 “내란 세력”으로 치부하고, 국회 표결 땐 수의 힘으로 투명인간 취급하기 일쑤니 여론이 사나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태종 때 같은 권력 안정은 기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