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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한수원-WEC 계약 공개 파문…한국, 2009년 UAE 원전 수출 때도 WEC에 보상해줘
원전 2기 시공 비용, 한수원이 WEC의 4분의 1에 불과…정상회담에서 미국 진출 타결 가능성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과 웨스팅하우스(WEC)의 원전 지식재산권 계약 내용이 공개돼 세상이 떠들썩하다. ‘불공정 계약’ ‘굴욕 협상’ 논란이 뜨겁다. 공개된 한전·한수원과 WEC의 지식재산권 분쟁 합의안에 따르면, WEC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원전을 수출할 경우, 1기당 1억7500만 달러(약 2400억원)의 기술사용료와 6억5000만 달러(약 9000억원) 상당의 핵심 기자재와 연료 등을 포함한 일감을 WEC에 제공해야 한다. 우리 기업이 독자 개발하고 있는 소형모듈원전(SMR)도 WEC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증명한 이후에야 수출할 수 있게 돼있다. 수출시장도 체코 이외 유럽과 북미 등 선진시장은 진출할 수 없으며 중동,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에만 진출 가능한 것으로 타협했다고 한다.

필자는 원자력산업을 위해 40년 가까운 인생을 바쳐온 사람이다. 특히, 1997년 WEC와 원전 기술 사용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 한전 측 당사자였다. 이번 협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고 협상의 여건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굴욕적이다, 부당한 계약이다’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쉬운 결과라는 시각에서 그동안의 한국 측과 WEC 측 원전 기술 지재권 문제를 살펴보고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

세계 경수로원전의 원천기술 보유국은 러시아와 미국이다. 캐나다는 중수를 사용하는 캔두(CANDU)라는 중수로원전의 원천기술 보유국이며, 우리나라 월성원전을 비롯해 일부 국가에서 운영 중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경수로원전을 건설·운영 중에 있다. 미국과 러시아 이외에 경수로를 건설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프랑스, 일본, 중국 등 4개국인데 모두 미국 WEC의 경수로원전 원천기술을 전수받아 원자로를 설계하고 건설 및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4개국 모두 각기 다른 형태와 조건으로 원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8월19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철규 위원장(가운데), 김원이 여당 간사(왼쪽), 박성민 야당 간사(오른쪽)가 올해 초 한전과 한수원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지식재산권 분쟁 종료 합의문 질의와 관련, 회의 순서를 조정하기 위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8월19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철규 위원장(가운데), 김원이 여당 간사(왼쪽), 박성민 야당 간사(오른쪽)가 올해 초 한전과 한수원이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맺은 지식재산권 분쟁 종료 합의문 질의와 관련, 회의 순서를 조정하기 위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은 항상 미국 회사와 동반 수출

프랑스의 경우는 자체 기술자립을 통해 1981년 미국으로부터 원전 기술을 완전 독립했다. 그렇다고 그 당시 기술 수준이 현재 한국의 원전 기술보다 월등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충분한 경제적 보상과 핵무기도 보유한 프랑스의 정치적 위상이 고려돼 양국은 원전 기술 독립에 합의했고 프랑스는 원전 기술 수출통제도 독자적으로 수행하며 수출에서도 자유롭게 미국과 경쟁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프랑스와 달리 기술 독립을 추구하지 않고 항상 미국 회사와 동반 진출을 추구하고 있다. GE-히타치, WEC-미쓰비시 등 합작법인을 통해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어 양국 간에 수출통제나 지식재산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국은 가장 늦게 원전산업에 뛰어들어 1990년대 이후 프랑스, 캐나다, 미국, 러시아 등 4개국 모두로부터 원전을 도입해 건설했고 이를 개량하거나 독자 원전(화롱)을 개발해 자국에 건설하거나 해외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50여 기 원전을 운영 중이며 20기 이상의 원전을 계속 건설 중인, 세계에서 가장 원전산업이 활성화된 국가다.

우리나라도 WEC와 긴 역사를 두고 원전 기술을 협력하고 있다. 최초는 1980년대 중반에 국가적 차원에서 원전 건설 국산화 계획을 수립하고 기술 국산화를 위한 기술전수 상대로 WEC를 선정하면서부터다. 기술전수 계약의 주요 내용은 한국이 그 기술을 사용하고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권리를 한국 측에 제공하는 것이었고, 그에 따른 보상으로 기술료는 4000만 달러(약 550억원)을 지불했고 유효기간은 10년(1987년 7월~97년 6월)이며 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는 더 이상 WEC의 원전 기술을 사용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따라서 기술전수 계약 종료 후 WEC 원전 기술의 계속 사용과 한국이 자체적인 신형 원전(현 APR1400)을 개발하기 위한 참조기술로서 WEC의 신형로 기술 사용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기술사용협정(License Agreement; LA)을 1997년에 체결했다.

필자는 당시 협상 당사자로서 원천기술의 영구적 사용 문제, 수출 권한, 수출통제 준수 등 핵심 쟁점 사항에 대해 회의록과 서신을 통해 기록을 남기고 미래 상황에 대비하려 했다. 우선 당시 한국전력(한수원 설립 이전으로 한전이 원전 사업 전부를 담당)은 이 협약 기간에 WEC 원전 기술 사용은 물론 기술자립을 통해 독자적 원전 수출 권한을 영구적으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핵심기술을 자립해도 완전 기술 독립(기술이 법적으로 제한되지 않으며 수출통제도 자유로운 상태)은 국가의 위상을 고려하거나 경제적 비용효과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수출통제는 준수하되 핵심기술을 자립해 자유로운 수출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지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왼쪽)과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오른쪽)가 2024년 9월20일(현지시간) 체코 플젠 산업단지 내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왼쪽 두 번째),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다니엘 프로 차스카 두산스코다파워 대표 간 체코 원전 사업 터빈 공급 확정 MOU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당시 대통령(왼쪽)과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오른쪽)가 2024년 9월20일(현지시간) 체코 플젠 산업단지 내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왼쪽 두 번째),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다니엘 프로 차스카 두산스코다파워 대표 간 체코 원전 사업 터빈 공급 확정 MOU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한국 원전의 진출은 미국 업계에서도 원해

기술사용협정(LA)의 내용을 요약하면 협정기간 중(1997~2007년) WEC 기술의 사용은 물론, 협정 종료 이후에도 WEC 원천기술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술료 보상으로 해결했으며 만약 핵심기술을 한국 측이 확보하지 못하면 별도로 보상하기로 하고 수출통제 준수를 조건으로 약 400억원 정도의 보상으로 협약을 체결했다. 따라서 2009년 UAE 원전 수출 시에는 협정 만료 이후지만 한국이 전산코드, 원자로 냉각재 펌프, 디지털 제어계통 등 3대 원전 핵심기술을 자립하지 못한 상태여서 WEC에 일감을 주며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와 주요국의 원전 지식재산권 문제를 살펴보았다. 이번에 공개된 한전·한수원과 WEC의 지식재산권 분쟁 합의안의 유불리를 떠나 40여 년 동안 노력해 이룩한 원자력산업의 경쟁력은 소중한 국가 자산이다. 미국의 원전 설계 원천기술을 사용했지만 ‘On Time, On Budget(공기 및 예산 준수)’으로 대표되는 사업관리 능력과 시공 기술력,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원전기기 제작 능력 등은 세계가 부러워하고 있다.

지난 한미 관세 협상에서 우리나라의 조선산업과 반도체산업이 주요 협력 대상이 된 것처럼 2050년까지 원전을 현재의 100GW에서 400GW로 확대하려는 트럼프 정부의 계획에 우리 원전산업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30년까지 대형원전 10기 건설을 추진한다고 하지만 미국의 전력산업계는 보글 원전 2기 건설에 350억 달러(약 47조원)를 들였던 WEC와의 사업 추진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최근 신한울 2기를 11조원에 건설할 정도로 경쟁력이 탁월하다. 미국의 싱크탱크 The National Interest에 따르면 이번 트럼프의 행정명령 문제점으로 한국을 직접 거론하면서 미국 원전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파트너십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할 정도로 미국도 한국 원전산업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한미동맹은 국가 안보와 경제 발전의 기반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두 나라 간 원전산업 협력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된다면 최근 불거진 원전 지식재산권 문제는 오히려 양국 원전산업 발전으로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의 역할과 성과를 기대한다. 

이종호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객원교수·전 한수원 기술본부장
이종호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객원교수·전 한수원 기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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