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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로 수명 연장됐지만 성인병은 오히려 더 일찍 찾아와
“건강 문제 불거지기 전에 미리 관리·예방하는 게 핵심”

요즘 건강 관리의 화두는 단연 ‘저속 노화(Slow Aging)’다. 저속 노화는 나이 들수록 노화돼 가는 것은 인정하되, 최대한 노화를 늦추자는 데 방점을 찍은 건강 트렌드다. 단순히 젊어 보이려는 외모 관리 차원을 넘어, 생물학적 노화 속도를 늦추고 건강한 삶의 기간을 연장하는 데 중점을 둔 라이프스타일이다. 신체적·정신적 건강까지 관리해 삶의 질을 높이려는 차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저속 노화에 가장 열광하는 세대가 팔팔한 2030세대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눈앞에 맞닥뜨린 중장년이 돼서야 자신의 노화 관리에 신경을 썼다면, 최근에는 20~30대는 물론 심지어 10대들도 ‘느리게 늙기’를 실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기만 해도 싱그러운 젊음의 아이콘이 왜 저속 노화에 주목하는 걸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은 100세 시대로 수명이 연장됐지만, 오히려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빠르게 병들고 늙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부모 세대가 50~60대에 경험했던 당뇨병·고혈압 같은 성인병을 젊은 세대가 10~20년 빨리 겪고 있다. 최근 5년간(2019∼23년)의 당뇨병 진료 현황에서는 20대 당뇨병 환자가 2019년에 비해 2023년 33.1% 증가했다. 10대도 23.7%, 10대 미만도 25.9% 증가했다. 또 디지털 미디어 중독, 스트레스, 우울감 등으로 젊은 세대의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서울 강남의 머슬팩토리에서 청년들이 사이클링 시범을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서울 강남의 머슬팩토리에서 청년들이 사이클링 시범을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헬시 플레저’ 트렌드와 맞물려 더 관심

전문가들은 연장된 수명만큼 병든 채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젊은 세대들의 저속 노화 트렌드에 불을 지피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모든 세대가 다 그렇겠지만 특히 20~30대의 저속 노화는 건강을 예방·관리하는 게 핵심이다. 문제가 발생한 뒤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미리 노화를 늦추는 쪽으로 그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조금이라도 천천히 늙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노화를 늦추려면 노화가 왜 일어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노화를 자동차에 비유한다. 자동차가 출고될 때는 반짝반짝 빛나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작동하지만, 오랜 세월 운전할수록 부품 마모가 심해지고 결국에는 기능 장애가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노화 또한 우리 몸을 구성하는 분자와 세포에 결함과 손상이 점진적으로 축적되면서 발생한다. 결국 세포는 분열을 멈추고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돼 외부에서 관찰되는 노화를 촉발한다. 자동차와 달리 우리 몸에는 이러한 손상을 복구하는 메커니즘이 내장되어 있지만, 복구 메커니즘조차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모되어 결국 전체 장기와 시스템의 기능에 영향을 미칠 만큼 손상이 누적된다. 

생명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설계 수명은 약 120년이다. 염색체 끝부분에 달린 텔로미어(Telomere·말단소체)는 세포분열을 거듭할수록 점점 짧아지는데, 사람의 경우 120년 정도면 더 이상 세포분열을 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도 120세 넘게 장수한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텔로미어는 매년 짧아진다. 따라서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고, 그래서 불로장생 또한 모든 이의 희망일 뿐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노화는 언제부터 시작될까. 보통 26세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미국 듀크대 댄 벨스키 교수팀이 1972~73년 태어난 성인 954명을 대상으로 텔로미어, 장, 간, 폐, 콜레스테롤 수치, 심폐 기능 등 총 18가지 항목을 조사한 연구에서 나타난 결과다. 생물의 신체 기능이 퇴화하는 노화는 나이와 정비례 관계다.

이런 과학적 연구를 고려할 때, 20대부터 시작하는 ‘가치 지향적인’ 저속 노화는 어쩌면 정해진 수순인지도 모른다. 건강 문제가 나타나기 전에 세포 손상을 줄여 노화 속도를 늦추려는 노력은 계속 활발해지는 중이다. 특히 ‘헬시 플레저’ 트렌드와 맞물려 저속 노화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지고 있다. 헬시 플레저는 ‘건강한(healthy)’과 ‘기쁨(pleasure)’의 합성어로, 건강을 추구하는 동시에 즐거움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외치는,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다가 1, 2, 3일 아프고 죽자”는 뜻의 건배사 ‘99881234’에는 저속 노화의 개념이 잘 깃들어있다. 

 

생활습관 개선, 노화 속도 4분의 1까지 늦춰

물론 과거에도 건강 열풍이 일었다. 2000년대 ‘웰빙(Well-being)’과 2010년대 ‘안티에이징(Anti-aging)’이 그것이다. 웰빙은 한마디로 ‘잘 살자’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넓은 의미로는 행복, 만족, 건강한 상태를 포괄하지만 좁게는 건강에 좋다는 유기농 제품을 먹는 정도였다.

안티에이징은 말 그대로 항노화를 뜻한다. 하지만 노화 방지용 화장품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될 만큼 외모 관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 때문에 비타민 요법, 태반 요법, 면역주사·정맥영양주사 요법 같은 안티에이징 치료가 인기를 끌었고, 보톡스·필러 같은 미용 시술이 확대됐다.

반면 요즘 MZ세대와 대화를 하다 보면 놀이처럼 즐기듯 느슨한 방식의 운동, 식단, 수면 패턴을 이야기한다. 운동량을 서서히 늘려가고, 수면 패턴이나 식습관을 천천히 개선해 지속 가능한 건강 관리를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틀에 맞추듯 일주일에 몇 회 이상의 운동을 해야 하고, 유기농 음식만 먹어야 하고, 당장 생활습관을 확 바꾸려고 한다면 오히려 스트레스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돼 노화가 더 빨리 진행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식습관과 생활습관, 운동, 스트레스 관리 등으로 노화 속도를 4분의 1까지 늦출 수 있다고 말한다. 신체활동은 젊음의 샘에 가장 가까워지는 길이고, 특히 저속 노화의 핵심은 건강한 식습관에 있다고 강조한다. 정제된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당분을 피하고, 단백질 식단에 식이섬유 등 섬유질을 적극적으로 섭취하길 권한다.

식습관 개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칼로리 제한이다. 칼로리 제한은 총 칼로리 섭취량을 줄이면서도 필수 영양소는 충분히 섭취하는 방법이다. 효모에서 설치류에 이르기까지, 칼로리 제한을 한다면 수명을 늘리고 노화 관련 질병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꽃이 피는 것이 본성이라면 지는 것도 본성이다. 그렇더라도 무심코 보내는 하루하루의 생활은 노화를 앞당기는 위험 요인이 될지 모른다. 살아가는 동안 노화를 늦추는 운동이나 적절한 식이요법, 호르몬 대체요법을 통해 노화를 방지하는 것이 좀 더 건강하게 노년 생활을 즐기는 비결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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