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각수 전 주일대사의 정상회담 평가 “방향이라도 정하는 합의 했어야”
“‘NO 공동성명’, 실무 차원의 ‘NO 합의’ 방증…관세전쟁·주한미군·북핵 후속조치가 관건”
“주한미군 역할 ‘조건’ 붙여 조정해야…국방비 인상도 ‘원칙과 기준’ 세워 대응해야”
“트럼프·이재명·김정은 연내 회담 가능성 낮아…한미일 3국협력에 韓 주도적 역할 필요”
이재명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을 통해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양국 모두에서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한계도 존재한다. 이번 회담에서는 관례와 다르게 공동성명이나 공동선언문이 발표되지 않았다. 합의된 문서가 없어 트럼프의 한마디에 언제든 다시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8월27일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을 “미완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피스 메이커-페이스메이커’ 발언으로 트럼프의 자존심을 치켜세우는 전략을 통해 이 대통령은 ‘반미·친중’ 인식을 불식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주한미군과 관세 문제부터 3500억 달러 대미(對美) 투자, 쌀·소고기를 포함한 농산물 시장 개방 여부 등 실무적인 내용은 여전히 ‘빈칸’으로 존재해 양측의 이견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빈칸을 채우는 것은 디테일이고, 악마는 늘 디테일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신 전 대사는 본게임은 이제부터라며 정부가 해결해야 할 3대 과제도 짚었다. 먼저, 관세 협상의 후속 조치다. 3500억 달러 투자에 1000억 달러의 에너지 수입, 농축산물 시장 개방 여부 등에 대한 입장 차이를 명확히 해야 기업들도 세부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의미다. 둘째는, 한미 동맹의 조정이다.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주한미군의 역할·규모 변화, 국방비 증액 규모 등에 대해 한국은 원칙과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은 북핵 문제다. 신 전 대사는 이 대통령의 ‘페이스메이커’ 발언대로라면, 북한 이슈를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은 보조만 한다는 뜻인데, 이런 역할론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금을 ‘끝나지 않는 협상(Forever negotiation)’의 시대라고 짚은 신 전 대사는 “한미 동맹은 지금 중대 기로에 서있다”며 “아무리 트럼프 외교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특징을 갖고 있더라도 합의문이나 공동성명이 없는 불확실성을 계속 방치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신 전 대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부 1·2차관을 역임한 40여 년 경력의 외교 베테랑이다. 주일대사도 역임해 일본통으로도 통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미완의 성공’이라 평가하는 이유는.
“파국적인 상황을 모면한 것 자체가 선방이다. 트럼프의 충동적·권위적·나르시시스트 성향을 상대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에 맞는 대화 스타일로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해,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겪은 회담 실패(Z Moment)의 우려를 잘 피했다. 한국 진보 정권의 반미 인식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을 불식시키고 한미 정상 간 우의를 다진 점은 성공적이다. 하지만 통상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 내용을 설명하는 공동 브리핑이나 관례적으로 나오는 합의문 발표가 없었다. 결국 불확실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향후 세부 협상안이 어떻게 채워질지 모른다는 점에서 ‘미완’이다.”
회담을 앞두고 트럼프의 ‘숙청’ ‘혁명’ 언급이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가 한국의 정치에 대해 정보가 있다는 증거다. 그에 관한 저서도 새벽에 일어나 신문과 방송을 다 챙겨 본다고 했다. 그만큼 한국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거다. 본인이 선거 관련 사건을 겪었던 만큼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더 민감하게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계엄 사태는 물론 탄핵과 여야의 격돌, 노란봉투법 등 반(反)기업 성향의 입법도 눈여겨보고 있지 않을까. 다만 이번 발언은 트럼프 특유의 흔들기 전략으로 읽힌다. 이 대통령이 흔들리지 않고 차분히 잘 대응했다고 본다.”
회담 후 공동합의문 발표가 없었다.
“분위기 조성은 잘했지만, 실무 과제는 산적해 있다. 양국 간 실무적 어려움이 있다는 건 회담 전후 과정에서 모두 드러났다. 대통령실 3실장이 이례적으로 모두 순방길에 오르고, 조현 외교부 장관은 한일 정상회담을 건너뛴 채 미국행에 나선 일련의 상황에서 미국과의 협상의 어려움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합의문 없이 불확실성을 계속 그대로 두는 것은 좋지 않다. 대강의 방향이라도 정하는 합의가 필요했다. 정부는 관세와 동맹, 북핵 문제 등 3대 과제를 조속히 조율하고 합의해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높여줘야 한다.”
하나씩 짚어보자. 관세 협상 후속 조치에서 유의할 점은.
“관세 문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7월31일 타결한 한미 관세 협상은 굉장히 애매모호하다. 양국 입장이 거의 하늘과 땅 차이다. 3500억 달러 투자의 방식을 두고 서로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는 ‘투자 보증’이라는데, 미국은 ‘직접 투자’라 한다. 미국은 1000억 달러의 에너지 수입을 두고 알래스카 유전 개발에 한국이 일본과 함께 지분 참여를 하라고도 했다. 농축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을 두고도 양국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후속 조치가 늦어지면 어떤 영향이 나타나게 될까.
“교섭은 정부가 하지만, 투자는 결국 기업이 한다. 협의가 조기에 이뤄져야 기업이 구체적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지금은 기본적인 ‘투자의 틀’조차 없는 상태다. 각 기업마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국내와 대미 투자액의 한계점이 각각 달라 전체 윤곽이 나오지 않으면 세부 작업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4차 산업에선 ‘투자 타이밍’이 생명인데, 정부의 협상이 늦어질수록 그 시기를 놓치게 된다. 여기에 국내에선 상법 개정안 등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 줄줄이 통과되고 성장률도 0%대에 불과한 가운데, 밖으로는 미국의 관세 폭탄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정부의 협상력이 떨어지고 늦어질수록 그 타격은 기업이 부담하고 일자리가 줄어 결국 서민들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안보 문제에서 핵심 쟁점은 무엇인가.
“이달 말 미국의 새 국방전략이 발표된다. 그 시점 이후 안보와 관련된 한미 동맹의 조정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토대로 한 주한미군의 역할 조정, 국방비와 방위비 증액,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모두 난제다. 우리는 우선 지금 미국이 ‘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부터 진단해야 한다.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은 세계 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주한미군의 규모·구성과 역할은 ‘트레이드 오프(trade-off)’ 즉 상호 연관관계에 놓여있다. 쌍둥이 적자(재정·무역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은 정부부채 이자 부담이 국방비를 넘어 더 이상 국방비를 늘리기 어려워졌고, 미·중 경쟁 격화 속에 주한미군을 대북 억지에만 활용할 수 없게 됐다. 이런 환경에서 양국 간 조정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미국이 주한미군을 빼 다른 곳에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동맹의 현대화’ 과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하는 건 불가피해졌다. 주한미군의 경우 이미 미국 언론은 4000명에서 최대 1만2000명까지 감축할 가능성을 보도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줄어들면 대북 억지력이 약화되고, 외국인 투자가 위축돼 경제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의 역할은 중국과의 관계 관리 차원에서 일정한 ‘조건(condition)’을 부여해 유연성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조정해 나가야 한다. 단 그 과정에서 우리 이익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대북 핵 억지력 제고에 중점을 두고, 미국 무기 구입에서도 북핵 방어와 억지에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한다.”
국방비 증액 문제에 대응할 방법은.
“이 대통령은 방미 일정 중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강연에서 국방비를 늘린다고 했다. 현재 한국의 직접 국방비는 국내총생산(GDP)의 2.3% 수준이다. 미국이 이를 3.8%로 1.5% 늘리라고 요구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굉장히 큰 액수다. 이를 실행하려면 복지 지출을 줄이거나 세수를 늘리는 극단적 선택밖에 없다.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본다. 국방비 증액 문제에서 중요한 건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증액이 불가피하다면 우리가 확실한 기준점을 설정하고 향후 미국의 요구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상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핵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이 대통령이 ‘트럼프는 피스 메이커, 저는 페이스메이커’라고 표현했는데, 뒤집어서 보면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이 보조한다’는 뜻이다. 현실적이지만 위험이 있는 역할론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가뜩이나 마가(MAGA)를 외치는 입장에서 한국의 입장을 얼마나 배려할지 알 수 없다. 명목상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주장하더라도 실제 협상에서는 미국 본토 위협 제거 수준에서 타협할 수도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북한 비핵화가 사실상 유야무야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이 문제는 우리가 당사자로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올해 트럼프-이재명-김정은의 3자 회동이 가능할까.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관건은 김정은의 의사다.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을 계기로 전략적 지위가 높아졌고, 중국과 러시아라는 비호 세력을 등에 업게 됐다. 중·러가 협조하지 않는 한 북한 비핵화의 진전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김정은 역시 트럼프와 만나는 시점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수습 경과에 따라 북한은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얻어낸 입지를 강조하면서 시간을 끌 가능성도 있다. 이럴수록 한국은 대화 가능성은 열어놓되 서두르지 말고, 북한이 핵 군축 협상이 아닌 비핵화 회담에 나오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당장은 어렵겠지만 한·미·일 협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견인해 북한이 궤도를 수정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안미경중 노선을 취할 수 없다’는 발언도 나왔다.
“이번 순방의 큰 메시지는 ‘한미 동맹이 우선’이라는 점이다. 한미 동맹을 축으로 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는 좀 더 관리해 가겠다는 방향을 보여줬다.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되, 한국 외교의 중심축은 한미 동맹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중국에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면 미국엔 ‘불신’을, 중국엔 ‘이용’의 여지를 제공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대통령이 전승절에 불참하는 건 당연한 결과이고, 장관급 인사의 방중이 적절했을 것이다.”
한일 정상회담은 어떻게 평가하나.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다. 일본 내에서는 한국의 대일 관계 개선 추세가 정권 교체 후에도 이어질지 불안해했는데, 이 대통령이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협력은 협력대로 투 트랙으로 가겠다’며 과거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밝히면서 불안을 해소했다. 한미 정상회담의 기초를 닦는 데도 기여했고 한·미·일 3각 협력 체제 유지·발전에도 역할을 해냈다. 다만 한국 내에서는 일본의 ‘성의 부족’에 대한 비판이 있다. 과거사 문제는 일본 내에서의 역사수정주의에 따른 인식 관련 후퇴를 방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계속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기회에 사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역사 연구와 교육에 중점을 두면서 중장기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현안인 강제동원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물론 유골 봉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한·미·일 협력 속 한국의 역할은 무엇이 돼야 할까.
“한·미·일 3국 협력은 북·중·러를 견제하는 데 가장 강력한 장치다. 한국은 지금까지 수동적이고 반응적이었다. 이제는 능동적으로 인도·태평양 전체를 시야에 두고 역할을 늘려가야 한다. 사무국을 설치해 협력을 제도화하고,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대미·대일 외교의 카드가 되고,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도 우리의 목소리가 존중된다. 외교는 ‘우리가 당사자니까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식으로 되는 게 아니다. 능력을 보여주고 책임을 다해야 정당한 몫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