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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법무장관, ‘국민 눈높이’ ‘디테일’ 강조하며 신중론 설파…민주당은 불쾌감
난기류 속 초안 공개 못 한 與 특위…“잘못된 틀 만들고 내용 잘 채우겠다? 국민에 피해”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 개혁이 중대 국면을 맞았다. 당과 정부, 대통령실은 검찰의 ‘수사·기소 분리’ 대원칙에는 이견이 없지만 각론에서는 확연한 온도차가 감지된다. 강경파인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이끄는 여당의 질주에 제동을 걸고 나선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38년 지기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불리던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다. 주무부처 장관의 ‘신중론’ 앞에 ‘폭풍 개혁’을 약속했던 민주당은 “장관이 선을 넘었다”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당정 간 이견은 외견상 ‘봉합’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지만 70년 넘게 유지돼온 형사사법 체계 변화를 앞두고 ‘격론’과 ‘격동’이 불가피 할 전망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성호 법무부 장관 ⓒ시사저널 박은숙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성호 법무부 장관 ⓒ시사저널 박은숙

소신 펼친 정성호…쏘아붙인 여당

이재명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던 검찰 개혁 양대 축을 맡고 있는 당정 간에 긴장감이 감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를 필두로 한 강경파는 ‘전광석화’ 같은 기세로 검찰 개혁을 몰아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거듭 ‘차분하고 확실한 개혁’을 주문하고 나서면서다.

정 장관은 8월26일 검찰 개혁의 본질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형사사법제도 역시 일반 국민들, 특히 범죄 피해자들이 이용하는 민생 정책”이라며 “조바심에 디테일을 놓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부실수사가 현실화된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사법 시스템에 대한 면밀한 접근과 설계 없이 추진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일선의 혼란이 가중된 현실을 직시하고, 이 시행착오를 이재명 정부가 반복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8월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민형배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8월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민형배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찰청 해체를 위해 ‘추석 전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를 자신했던 민주당은 정 장관의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반박하며 불쾌감을 표출했다. 정권 초반 집권여당이 자당 출신 장관과 대립각을 세우며 공방을 주고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청래호 출항’에 맞춰 닻을 올린 민주당 검찰정상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8월27일 법무부가 참여하는 비공개 당정 협의가 취소된 후 “당 지도부에서는 (정성호) 장관께서 너무 나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이 8월25일 국회에 출석해 중대범죄수사청을 행정안전부 산하에 둘 경우 권한 집중이 우려된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하는 우려가 있다. (정 장관이 민주당)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는 비난성 발언까지 이어졌다.

민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은 정청래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가 정 장관의 발언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검찰 개혁의 시작과 마침표는 결국 ‘입법’이니만큼 당이 전면에서 주도적인 흐름을 만들어가는 상황에서 정 장관이 제동을 건 것은 시기도, 방법도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이 공개적으로 거듭 우려를 표명하자 민주당 강성 지지층은 그를 ‘반개혁적 인사’라 성토하며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으로 5선을 하며 사법개혁특위를 이끌기도 했던 정 장관은 ‘정치검찰 탄생’의 토대이자 ‘정치 수사’의 도구가 된 수사·기소권의 분리, 특히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시스템 설계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정 장관이 남긴 페이스북 게시물에는 “장관이 검찰에 포섭됐다” 등 수 백개에 달하는 항의성 댓글이 달렸다.

“검찰 개혁이 범죄인 활개로 이어지면 개악”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정 장관은 임명 전부터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 개혁 4법과 정부조직법 개정 문제, 검찰의 영장청구권 등과 관련한 위헌 논란 등을 제대로 파악한 뒤 세부 안을 확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파해 왔다. 특히 정 장관은 최근 정치권 관계자들과의 만남에서 ‘정청래식 검찰 토벌과 해체’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현재와 같은 방식이라면 검찰 개혁이 국민과 정권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이 기조에 따라 법무부는 민주당 특위에서 논의 중인 검찰 개혁 4법을 골자로 한 입법 추진에 대해 지속적으로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중수청 설치 외 나머지 안에 대해서는 당정이 핵심 쟁점 전반에서 이견을 드러낸 것으로 파악된다. 

우선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수사위원회(국수위)를 설치하는 것부터 셈법이 다르다. 민주당 특위는 검찰청 해체 후 국수위에 경찰과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및 중수청까지 4대 수사기관을 통합·관리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방안에 힘을 싣고 있다. 총리실 산하에 국수위를 설치해 수사기관 간 발생할 수 있는 권한 및 관할 충돌을 조정한다는 것이다.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에 대한 이의제기 건 심의와 수사 적정성 점검 등도 국수위가 담당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정 장관은 대통령과 총리 의중에 따라 국수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구조라며 민주적 권력 통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11명에 불과한 국수위 소속 위원이 연간 4만 건이 넘는 경찰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의신청을 판단·처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짚었다. 검찰 개혁을 통해 탄생한 기관이 오히려 수사 권한 오남용을 일으킬 수 있고, 국정 혼란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게 정 장관과 법무부의 입장이다.

중수청을 어디에 설치하느냐도 뜨거운 감자다. 민주당 발의안은 검찰의 수사 기능을 분리해 만든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는 것이다. 법무부 아래에 중수청과 공소청을 함께 두는 것은 수사·기소 분리라는 대원칙과 어긋나고, ‘검찰 부활’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어서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반면 정 장관은 경찰과 국수본, 중수청이 모두 행안부로 쏠리면 수사기관 간 견제가 사라지고 ‘정치 수사’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우려한다. ‘제2의 윤석열과 이상민’이 나타날 경우 시스템으로 이를 차단할 수 없고, 행안부가 수사기관을 통솔하는 것은 부처의 본질적 기능과도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보완수사권도 첨예한 쟁점이다. 특위는 검사의 ‘보완수사권’은 없애고,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 요구권’만 남긴다는 입장이다. 보완수사권을 남겨두는 것은 실질적인 수사권 분리로 볼 수 없고 사실상 검찰의 수사지휘권 부활로 이어져 개혁이 아닌 ‘후퇴’에 더 가깝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정 장관은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국한해 동일성 범위 내에선 보완수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경찰이 수사한 사건을 공소청으로 ‘전건 송치’해 적정성과 공소 제기 여부를 모두 판단받도록 하는 방안을 열어두고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인권변호사 출신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또한 검찰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도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폐지하되 보완수사권은 인정하고 (공소청 등이) 경찰로부터 사건을 전건 송치받아야 한다”며 “수사 사건의 통제는 국수위 같은 외부 위원회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민주당 법안에 우려를 표명했다. 박 교수는 “검찰 개혁의 목적은 검찰권 남용을 방지하는 제도적 대책을 만드는 것이다. 만일 검찰권 남용을 방지한다는 대책이 범죄인이 활개 치는 결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안 하느니만 못한 개악”이라며 당정이 ‘단순하고, 실현 가능하며, 효과적인’ 개혁안을 도출하기 위한 숙의와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7월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7월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석 전 검찰청 해체’ 시간표 조정되나

검찰 개혁을 둘러싼 당정 간 일련의 흐름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을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린다. 이 대통령이 5선의 검찰 개혁 온건파인 정 장관과 검찰 출신의 봉욱 민정수석을 임명할 때 이미 당과의 ‘건설적 불협화음’까지 염두에 둔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친명계 좌장’으로 대변되는 정 장관은 임명 전부터 검찰 개혁은 반드시 완수해야 하지만, 동시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당내 강성 개혁파와의 충돌이 예견되는 상황에서도 그를 법무부 장관에 낙점한 것은 이 대통령이 거듭 주문한 대로 ‘갑론을박의 장’을 펼쳐야 하고, 또 이를 제대로 끌고 가는 전문성과 정치력이 뒷받침되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 장관의 제동도 70년 넘게 한 방향으로 흘러온 형사사법 체계의 대변혁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대통령실과의 교집합을 토대로 나온 것이란 분석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정성호 장관의 정책 보좌관은 대통령의 변호인을 했던 (정부 출범 초기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낸) 조상호 변호사”라며 “(검찰 개혁에 대한) 정 장관의 발언은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청래 대표가 제시한 ‘추석 전 1차 입법’의 시간표가 늦춰질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민주당은 9월25일 검찰청을 중수청과 공소청으로 분리하는 정부조직법을 개정한 뒤 2단계, 3단계 개혁으로 나아간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당초 이달 말 특위에서 공개될 예정이었던 개혁안 초안조차 아직 나오지 않았고, 초안을 토대로 당 안팎의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한 달 내 입법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검찰총장’과 ‘검사’의 지위·역할이 헌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하위 법인 법률 개정으로 검찰청 폐지를 추진할 경우 위헌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점도 부담이다. ‘검찰’ 명칭이 명시된 법률과 대통령령 등이 300여 개에 달하는 만큼 정부조직법부터 손본다는 출발선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당내에서조차 “추석 밥상에 검찰청 해체 성과를 올리는 것은 무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의 검찰 개혁 추진안에 반대해온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민주당의 제 발등 찍기”라며 “국수위는 매년 1조원 이상 소요되는 거대 조직이고 중수청을 어디 산하에 만들지도 미지수인데 몇 주 내로 어떻게 정부조직법을 개정하느냐”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여당이 검찰 개혁을 ‘추석용 전리품’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며 “잘못된 틀을 만들어놓고 어떻게 내용을 잘 채우겠다는 건지, 참혹한 수준의 법들이 통과되면 피해를 보는 것은 평범한 시민들이며 취약계층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당과 정 장관은 8월28일 검찰 개혁을 둘러싼 이상기류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자 진화에 나섰다. 

정 장관은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린 정기국회 대비 당 워크숍에 참석해 “이견은 없다. 수사·기소 분리 원칙이 확실하고, 이를 정부조직법에 반영할 것”이라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에 있다. 의원들이 폭넓게 의견 수렴해 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 대표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해야 할 검찰·언론·사법개혁, 당원 주권 개혁은 한 치의 오차나 흔들림이나 불협화음 없이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며 ‘결집’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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