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끌어내라” “언론사 단전·단수” 14명의 증언들
尹측, 홍장원·곽종근의 신뢰성 공격하며 “사전 공작” 주장하기도
대한민국의 운명이 역사적 기로 앞에 놓였다. 헌정사상 처음 내란 의혹으로 탄핵소추된 현직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은 오는 3월 결정될 것이 확실시된다. 이대로라면 2017년 3월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 이후 8년여 만이다. 두 번의 탄핵 정국이 평행이론처럼 겹쳐지는 상황에서, 두 지도자의 마지막 모습도 같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윤석열 대통령이 받게 될 결정문은 정국의 변곡점이 될 조기 대통령선거 국면과 직결된다.
그 중심에 선 헌법재판소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왔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핵심 증인 14명이 두 달도 안 되는 사이 심판정에 섰다. 윤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이 쏟아졌다. “국회 등 헌법기관을 마비시킬 목적 없이 절차와 요건에 부합하는 비상계엄”이라는 윤 대통령 논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 측 신청 증인조차 비상계엄 선포 이유라는 ‘부정선거 의혹’에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헌재 대심판정을 거쳐 갔고 또 다가올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尹 파면 뒤 5월 조기 대선 가능성 커져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가 결정되는 시기는 현재로서 불명확하다. 2024년 12월14일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과 동시에 헌재에 사건이 접수된 지 62일째인 2월13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정원 9인 중 1인 공석)은 이날 8차 변론기일에서 선고일시를 공지하지 않았다. 다만 2월18일 오후 2시 한 차례 더 변론기일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9차 변론기일에서는 증거조사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윤 대통령 측이 요청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등 추가 증인들의 채택 여부를 논의하겠다지만, 최종 결정 시기를 못 박지 않았다. 앞선 재판관 평의 결과 한 총리 등의 증인은 기각된 바 있다.
이런 일정대로라면 선고기일은 3월 중 나올 가능성이 크다. 지정된 일정 외에 추가 기일이 잡히더라도 이르면 3월초, 늦어도 3월 중순으로 점쳐진다. 법조계는 재판관들이 결정문을 쓰는 시간과 과거 사건 등을 토대로 “마지막 변론기일 후 2~3주 정도 지나 결정될 것”이라고 예측해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에서는 11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14일이 걸렸다. 사건 접수일을 기준으로 하면 박 전 대통령은 91일, 노 전 대통령은 63일 만에 탄핵이 인용되거나 기각됐다. 헌재법상 심판사건은 접수일 기준 최장 180일 이내에 선고하도록 돼 있다.
바꿔 말하면 5월 대통령선거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의 파면이 확실시되면 조기 대선이 불가피하다. 헌법과 공직선거법은 그 시기를 “선거 실시사유가 확정된 때부터 60일 이내”라고 규정한다. 헌재의 선고일 기준 두 달 내 조기 대선이 치러질 수밖에 없다. 과거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 인용(파면) 당시 61일째인 2017년 5월9일 19대 대선이 치러졌다.
“尹, 대통령 고유권한을 남용했다”
현직 대통령이 내란 의혹으로 탄핵소추된 건 헌정사상 처음이다. 내란죄 피고인 신분이 된 현직 대통령도 전례가 없다. 역사상 첫 기록인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정에는 증인 14명이 출석했다(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진행 현황> 참조). 핵심 인물들은 앞선 변론기일에서 주요 증언을 한 상황이다. 법조계가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배경이다. 재판관 8인은 수사기록과 국회 회의록 등 주요 진술이 기재된 공문서도 확보해 파악했다.
윤 대통령의 논리는 이 과정에서 무너지는 모양새다. 12·3 비상계엄 당시 ①국무회의 심의 등 절차상 흠결 ②위헌·위법적 내용의 계엄포고령 ③유일한 비상계엄 견제 수단인 국회 활동 방해 ④헌법기관인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의 병력 이동과 마비 상태 초래 ⑤지체 없는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 이행 등 ‘내란 목적의 비상계엄’을 뒷받침할 쟁점 부분이다. 비상계엄이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권한일지라도 대통령 권한 남용이 문제라는 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법조계 중론이다. 윤 대통령은 요건도, 절차도, 대통령 권한 남용도 없는 “헌법과 법률에 따른 비상계엄”이라는 입장을 줄곧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의 증언은 이와 배치됐다.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취지다. ③번, ④번과 관련한 사안이다. 곽 전 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의결정족수가 안 됐다고 하니 문을 부수고서라도 들어가 안에 있는 인원을 끌어내라고 했다”고 재차 말했다. 김 전 장관은 150명을 넘으면 안 된다는 취지로 전했다고도 했다. 이는 실수로 켜둔 전투통제실 마이크를 통해 전파됐다. 전파 내용을 직접 듣지 못한 김현태 특전사 707특수임무단장은 별도로 곽 전 사령관에게서 국회의원 관련 지시를 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다만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국회에) 들어갈 수 없겠느냐’고 곽 사령관이 물어왔다”고 증언했다.
조성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도 이를 뒷받침했다. 조 단장은 “지난해 12월4일 0시40분경 상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에게서 ‘본청 내부에 진입해 국회의원을 외부로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인정했다. 구체적 답변을 피한 이 전 사령관이 당시 윤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조 단장은 또 곽 전 사령관의 증언처럼 “비상계엄 해제안 가결 후 병력 철수를 먼저 건의해 승인을 받고 인력을 뺐다”고 말했다. ⑤번과 관련한 윤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군 지휘관들이 국회 가결에 따라 병력 철수를 먼저 건의했다는 취지다.
①번과 ②번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을 향한 충심(忠心)을 드러낸 김 전 장관은 물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비상계엄 당일 밤 국무회의 절차상 문제를 부정했다. 정상적인 심의를 거쳤다는 것이다. 박안수 계엄사령관 임명 등 안건 논의도 “계엄선포문을 배포했다(김용현)”거나 “테이블 위 선포문으로 보이는 종이를 봤다(이상민)”며 존재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는 금세 무색해졌다. 조태용 국정원장이 이와 달리 “선포문을 못 봤다”고 말하면서다. 비상계엄 안건조차 몰랐다는 취지다. 이 전 장관은 ‘내란몰이’ 등 여러 사정을 설명했지만 결론적으로 당시 회의록이 없다고 말했다. 그를 비롯해 조 원장, 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등은 모두 비상계엄에 반대하거나 우려했다고 전했다.
언론사 통제 등 포고령 내용의 실행 여부도 논란거리다. 검찰 공소장에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당일 이 전 장관에게 특정 언론사 등에 대한 단전과 단수를 지시했다는 대목이 담겼다. 이 전 장관은 이를 부인하면서도 이와 관련한 메모를 목격했다고 답했다. 대통령 집무실 원형탁자 위에 있는 ‘소방청장’과 ‘단전, 단수’가 적힌 메모를 봤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떠올라 소방청장에게 시민 안전 등을 당부하는 전화를 했다고도 증언했다.
비상계엄 사태의 핵심 배경으로 떠오른 부정선거 의혹은 되레 부정됐다. 윤 대통령 측 증인들조차 이에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의 병력 투입 등에 대해 부정선거 가능성을 이유로 내비쳤다. 2023년 10월 국정원의 점검 결과 중앙선관위의 PC 서버 일부만 조사했는데도 해킹에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백종욱 전 국정원 3차장은 “점검상태에서는 기술적으로 데이터를 변경할 수 있다”면서도 “부정선거가 아니라 시스템만 점검했기 때문에 결과만으로 부정선거 전체를 보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데이터 변경 등 부정선거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취지다.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자체 보안 시스템이 일부 적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의 해킹이 진행됐다고 반박했다. 보안 점검 진행 당시 국정원이 해킹툴(해킹 도구)을 설치했을 때 보안관제 시스템에서 자동 차단됐다는 것이다. 신원식 안보실장 역시 중국의 국내 선거 개입 가능성 등에 대해 “외교적 문제”라거나 “가능성을 전제로 한 질문”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홍장원, 민주당 의원에게 7차례 인사 청탁”
윤석열 대통령 측은 자신에 대한 불리한 증언의 신뢰성을 무너트리려 하고 있다. 홍장원 전 1차장이 집중 대상이 됐다. 홍 전 1차장은 비상계엄 선포 후인 지난해 12월3일 밤 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싹 다 잡아들여라’ ‘방첩사를 도와라’ 등의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여인형 전 사령관이 이후 체포 명단을 불러줬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 측과 여권은 12월4일 새벽 홍 전 1차장이 국정원 출신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문자메시지를 나눈 사실을 문제 삼았다. 홍 전 1차장이 이날 오후 조태용 원장에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통화를 권유한 사실도 꺼냈다.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된다는 취지다.
나아가 야권과의 ‘사전 탄핵 공작’이라는 게 윤 대통령과 여권 일각의 시각이다. 홍 전 1차장의 해임 통보 직후인 지난해 12월6일 ‘정치인 체포 지시’ 보도가 나오면서 내란몰이가 시작됐다는 게 그 이유다.
자연스레 ‘홍장원 메모’에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메모 출처인 여 전 사령관과 홍 전 1차장의 통화 시점(12월3일 밤 11시6분)을 두고 “당시 상황과 맞지 않다”고 반박한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조 원장도 힘을 보탰다. 홍 전 1차장이 통화 당시 국정원 공관 앞 공터에서 체포명단을 적었다고 했지만,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사무실에 있었다고 밝히면서다.
조 원장은 “홍 전 1차장의 메모나 증언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보좌관에게 “직접 확인했다”며 홍 전 1차장이 직접 포스트잇에 쓴 1차 메모, 자신의 보좌관에게 이를 건네고 다시 쓰게 한 2차 메모, 비상계엄 다음 날 보좌관에게 ‘(2차 메모를 봤으니) 기억나는 대로 다시 써달라’며 작성케 한 3차 메모, 이 위에 덧대 쓴(가필, 加筆) 4차 메모로 분류했다. 조태용 원장은 또 “홍장원 전 1차장이 지난 정부 국정원에 재직했던 야당 의원에게 7차례 인사 청탁을 했다”라고 증언했다. 그는 해당 의원이 박지원·박선원 의원 중 한 명이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로써 홍장원 전 1차장이 민주당 쪽과 사전 소통했을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됐다.
이 밖에 곽 전 사령관이 국회 국방위에서 야권에 회유당했다는 주장 등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의 발언 기회조차 일부 제한한 헌재 재판관들의 절차 진행을 지적한 이영림 춘천지검장의 주장에 동조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큰 맥락의 사실관계 자체는 흔들리지 않는 듯하다. 김용현 전 장관과 여인형 전 사령관의 탄핵심판정 증언과 조지호 경찰청장의 수사기관 진술 등을 종합하면, 김 전 장관은 비상계엄 당일 계엄포고령 위반 가능성이 있는 명단을 여 전 사령관에게 알려줬다. 이후 여 전 사령관은 이날 밤 10시30분경 조 청장에게 이를 공유하고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명단의 목적과 관련해서는 견해가 엇갈리지만 명단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