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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수단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의 결과
스펙도 타이틀도 지워진 후 남는 건 계산 없는 진심이다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박용후 관점디자이너

인간관계는 참 어렵다. 누구나 그렇게 느낀다. 잘해보려 해도 뜻대로 되지 않고, 오해는 쉽게 쌓이지만 이해는 더디다. 같은 말을 해도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고,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반응이 돌아온다. 왜일까. 그건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다르고, 겪어온 경험이 달라서다. 이걸 스키마(schema)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인간의 스키마는 인지심리학에서 인간이 정보를 조직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구조화된 지식의 틀 또는 인지적 구조로 정의된다. 따라서 사람마다 인생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고, 그 다름이 때로는 벽이 된다. 마음을 열고 다가가도 상처를 입을까 조심스러워지고,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거리를 두며 살아간다.

기자 시절, 오랜기간 기자 일을 한 선배 한 분이 있었다. 성실하고 능력 있는 분이었고, 누구보다 일에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선배가 기자직을 내려놓던 날, 술자리에서 조용히 털어놓은 말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내 인맥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어.” 언론인이라는 직함이 사라지자, 관계도 함께 끊어졌다는 이야기였다. 충격이었다. 그토록 열심히 달려온 사람이었는데, 그 열정이 사람을 남기지는 못한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관계는 자동으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걸. 오히려 더 바쁘고 더 치열한 삶일수록, 사람을 ‘일의 수단’처럼 대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관계는 도구가 되고, 만남은 목적을 위한 장치가 된다. 그러다 일이 끝나면 사람도 함께 사라진다. 일이 전부였던 사람일수록 공허함은 더 깊다.

그래서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관계가 오래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일이 사라져도 사람이 남을 수 있을까. 답은 단순했다.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진심으로 갖는 것.” 이해관계가 아니라, 마음. 조건 없이, 계산 없이, 그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을 내 기본값으로 장착하자고 다짐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대하는 눈빛이 바뀌고, 말의 온도가 달라졌다. 그렇게 관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음을 담은 말은 전해진다. 마음으로 건넨 관심은 기억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진심을 알아본다. 그래서 진심으로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 수밖에 없다. 일본 작가 나카타니 아키히로가 말한 것처럼 “나를 도와줄 사람의 수는 내가 도와준 사람의 수와 같다.” 이 말은 결국, 마음이 마음을 부른다는 뜻이다. 내가 먼저 진심을 보내면, 언젠가는 그 진심이 돌아온다.

물론 이 마음이 당장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이용당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이 원칙을 지키고 나면, 결국 남는 사람은 남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직업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어도, 마음을 나눴던 인연은 그대로 남아 있다.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진심으로 응원해준다면, 우리는 절대 그 사람을 잊지 않는다. 힘든 순간에 떠오르는 얼굴, 축하를 받고 싶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 그런 존재는 마음으로 연결된 사람이다. 인생이 깊어질수록 그런 사람들의 가치가 더욱 소중해진다.

결국 인간관계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말솜씨보다 중요한 건 마음의 진실함이다. 가까이 다가가는 용기보다 더 중요한 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따뜻함이다.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건 다름이 아니라, 그 다름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매일 다짐한다. ‘이 사람이 잘되기를, 행복하기를.’ 그렇게 마음속으로 한 번 더 기도하며 사람을 대한다. 계산하지 않고,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그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면, 일이 사라져도 사람이 남는다. 그리고 결국, 내 인생에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것도 그런 사람들이다.

좋은 인간관계란 거창한 게 아니다. 마음을 담아 인연을 이어가는 일. 따뜻함을 잃지 않고,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일. 우리가 끝까지 안고 가야 할 관계는, 결국 마음을 나눈 사람들뿐이다. 세상이 바뀌고, 내가 바뀌어도, 진심은 끝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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