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남벌’ 시작되었다

(일본 제목 ‘후유노 소나타’)가 일본 열도를 강타했다. 지난 겨울, NHK 위성 방송에서 방영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가 여세를 몰아 4월3일부터 지상파 방송에서 재방송되고...

타악의 명인 고 김대환의 음악과 열정

지난 1월 중순, 김대환씨의 지인들은 엽서 한 장씩을 받았다. 한성대에서 열리는 김씨 명예철학박사 학위수여식에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엽서 표지가 눈길을 끌었다. 빛 바랜 아...

< 맘마미아! > 와 `맞짱` 뜬 < 와이키키 브라더스 >

도대체 가당찮은 짓이다. 세계를 뒤흔들고 서울에 입성한 가(아무리 오리지널이 아닌 OEM 제품이라 할지라도) 감히 창작 뮤지컬 따위가 맞짱 뜰 상대인가. 자본력과 제작 기간과 시스...

아줌마 전성 시대 아저씨는 착잡하네

아저씨는 착잡했습니다. 를 보고 와서 젊은 배우를 칭찬한 것까지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물 먹은 솜 같은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섰을 때, 드라마 을 보느라 알은 체도 하지 않는 아...

오나라 오나라 국악 르네상스

“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 / 가나라 가나라 아주 가나 / 나나니 나려도 못 노나니 / 아니리 아니리 아니 노네.”드라마 이 방영되는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밤, 우리의 선율이 전파...

꽁트 '명절은 남자도 괴로워'

당신은 ‘명절’에 대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별 생각 없다는 사람은 남자, 괴롭다는 사람은 여자, 즐겁다는 사람은 아이. 동의가 되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남자다. 물론 항변...

반갑고 아쉬운 ‘조용필’ 기사

가수 조용필씨의 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제720호 스페셜 리포트 ‘숨 쉬는 시간말고는 음악만 하고 싶다’를 잘 읽었다. 기사는 조용필씨 인터뷰와 그 팬들의 활동 그리고 그룹 ‘동...

“숨쉬는 시간말고는 음악만 하고 싶다”

용필의 기념 콘서트 가 이달 말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딛고 다시 무대 위에 올라선 그의 35년 음악 인생을 서른다섯 가지 질문과 응답을 통해 알...

‘오빠 부대’ 원조 조용필 팬클럽의 어제와 오늘

평양을 보고 나니까 한강이 눈에 차지 않는다.” 조용필 팬클럽 연합 모임 ‘필21’의 회원인 대학생 박수강씨(26)의 말이다. ‘국민 가수’라는 칭호에 걸맞게 조용필 팬클럽은 10...

조용필 음악은 한국 대중음악의 '독립선언'

슈퍼 스타 조용필, 그의 역사를 되짚어보기 위해서는 그가 밴드 생활을 시작한 1968년부터 살펴야 한다. 1968년은 한국에 모던 포크 음악이 태동하던 해이다. 1960년대까지의 ...

선입견의 실체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통과 의례처럼 새로운 결심을 한다. 하지만 실행 여부를 떠나 ‘새로운’ 결심 자체가 쉽지 않다. 애초부터 머리 속에 자리 잡은 고정 관념이나 견해가 새로운...

釜山→부산→B USAN 해양 수도로, 아시아 허브로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동안, 아시아의 수도는 부산이었다. 서쪽 베이루트에서 동쪽의 도쿄, 북쪽 베이징에서 남쪽 자카르타에 이르기까지 37억 아시아인들은 시계 바늘을 부산 현지 시각에...

시인과 가수의 명동블루스

명동은 한때 문인들의 본향이었다. 청동다방에 가면 종일 그곳에 죽치고 앉아 문학 청년들과 정담을 나누는 공초 오상순을, 대폿집 은성에 가면 결코 안주를 시키는 법 없이 막술만 먹는...

당신은 우리에게 뭔가 보여주었습니다

'뭔가 한번 보여드리겠다’던 마흔 살 무명 코미디언의 비장한 방송 데뷔 멘트는 22년이 지난 후 역설적이게도 자기 부음에 염질을 한 행복한 유언이 되고 말았다. 밤무대 ‘가방모찌’...

<아리랑> 위해 뛰다 발병 났네

한국아리랑연합회(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48)에게 올해는 ‘최고의 해’가 될 뻔한 ‘최악의 해’였다. 이 민족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아리랑 축전’으로 불린 ...

물렀거라 '한 개비 귀신'

술 많이 마시기로 소문 난 연예계. 이곳에서도 이주일씨는 알아주는 주당이었다. 그와 대적할 맞수는 가수 조용필씨뿐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끝을 보는 두주불사형. 만취 상태로 남의 집...

장파리, 60년대엔 기지촌으로 이름 날려

조용필이 노래하고 양색시 들끓고 장파리는 1971년 미군 2사단이 동두천으로 옮겨갈 때까지만 해도 강아지도 달러를 물고 다닐 정도로 잘 나가는 기지촌이었다. 북진교 건너편에 연대급...

[대중 음악] 혁명아 서태지 '판 뒤집기'에는 실패

2월3일 고별 공연후 미국행… 상업적으로는 성공, 음악적 영향은 거의 없어 사진설명 예전 같지 않았다 : 컴백한 서태지는 국내 가요제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실패했다.서...

[대중문화]돌아온 문화 혁명가 서태지

서태지는 20대 초반에 4년간 활동하고 은퇴한 ‘한 명의 가수’였다. 그가 남긴 작품은 정규 앨범 4장과 ‘절반의 컴백’으로 기록된 독집 1장뿐이었다. 가수가 퇴장하면 몇 달 만에...

[문화비평] ''쪽팔리아''의 긴데쿤타 이야기

내이름은 긴데쿤타, 서른다섯 살, 아프리카 동안(東岸)의 작은 나라 쪽팔리아 출신 유학생으로, 현재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 과정의 끝마무리를 하고 있다. 내 학위 논문은 ‘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