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 세계 뜨겁게 달구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몰고 온 연결과 공감 
중장년층, 여러 위기 지나고도 변화의 주역이자 목격자로서 건재

[편집자 주] 시사저널은 7월부터 ‘남인숙의 신중년이 온다’를 새롭게 연재합니다. 이른바 ‘신중년’으로 불리는 현재 대한민국 중년은 처음으로 개인으로서의 자아를 가져본 세대입니다. 그 어느 시대보다 서서히 나이 들어가며 인생 두 번째 챕터를 넘기고 있는 이들은 이미 앞으로의 삶의 질을 위해 인식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새 연재에서는 중년에 이른 이들이 변화무쌍한 세상을 들여다보며 또 다른 내적 성장을 할 수 있는 시선을 제안할 것입니다. 필자 남인숙 작가는 국내외에서 380만 부 판매로 에세이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한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와 《남인숙의 어른 수업》 등 숱한 베스트셀러와 유튜브 활동, 활발한 강연으로 뜨거운 지지와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캐나다 동부에 살고 있는 동생이 재미있으니 한번 보라며 웬 동영상 링크를 하나 보내왔다. 그건 다름 아닌 ‘케데헌’이라는 줄임말 애칭으로 불리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예고편이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캐나다 아이로 자라고 있는 조카가 세 번이나 돌려보며 권하기에 같이 봤더니 재미있더란다. 이미 세 번째 시청을 하고 있던 필자는 ‘웬 뒷북이냐’며 오히려 그동안 알게 된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동생에게 한참 들려주었다. 애초 넷플릭스의 기대작이 아니었던 이 낯선 만화영화는 연일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젊은 세대와의 공감 폭 넓히는 ‘케데헌’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말하자면 ‘미국산 한국 아이돌 액션 오컬트 애니메이션’이라는 온통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의 조합으로 설명되는 영화다. ‘헌트릭스’라는 K팝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는 세 소녀가 실은 악령을 물리치는 사냥꾼이며 끝내 위기에 처한 세상을 구한다는 서사다.

제목과 포스터의 첫인상은 ‘유치할 것 같다’ 정도였다. K팝 열풍에 탑승한 어린이 대상 만화겠지 싶었는데, 하루이틀 지날수록 들려오는 소문이 심상치 않았다. 결국 이걸 대학 졸업반인 딸과 함께 보게 되었다. 소감이 어땠는지는 세 번째 보고 있다는 앞선 언급으로 대신하려고 한다. 첫 번째 시청은 이야기를 따라가며 너무나 한국적인 부분들에 감탄하다 끝났고, 영화 속 몇몇 노래가 귓가에 맴돌아 두 번째로 보게 되었으며, 이제 놓친 디테일을 확인하고 싶어서 쉴 때마다 조금씩 보고 있다. 요즘 세계적으로 인기 있다는 K팝 스타들도 모두 초면일 만큼 무관심한 필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시대에는 점차 ‘공감’이 희소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날의 매스미디어는 헤게모니적이었지만 손쉬운 공감의 토대이기는 했다. 대다수 사람이 동시에 접하는 콘텐츠가 전부였던 시대에는 미디어가 제시하는 테두리 안에서 가치관이나 취향이 형성되었다. 누구를 만나든 그 시기의 인기 있는 드라마를 주제로 말문을 틀 수 있었으며,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감상을 나눌 수도 있었다. 그러나 모바일 기기와 개인 미디어 시대가 열린 이후 같은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수만 가지로 분화되었고, 우리는 같은 지점에서 분노하고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시대를 살게 되었다.

시대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벌어지는 간극은 세대 논의로 옮아갈 때 더 심각해진다. 이제 온 가족이 TV 앞에 앉아 《개그 콘서트》를 보면서 함께 폭소하던 풍경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렵다. 기성세대는 젠지세대(10~20대) 사이에서 웃긴다고 공유되는 콘텐츠를 보면 어리둥절이고, 젠지들은 어른들 사이에서 터지는 농담에 짜증을 느낀다. 직업 특성상 트렌드에 민감한 필자도 모녀 관계에서의 공감만큼은 쉽지 않다. 관계가 꽤 좋은 편인데도 그렇다. 그나마 십 년 전 집에 들인 후 끊임없이 화젯거리를 생산하고 있는 고양이가 없었다면 지금 하는 대화의 절반 이상은 사라졌을 것이다.

‘케데헌’은 이렇게 우리가 과거 부모와의 것보다 세대 차의 간격이 넓은 새 세대와 공유할 것이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귀에 박히는 음악과 연출,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과 성장 과정에서 세대를 관통하는 공감을 느끼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종적 공감뿐 아니라 횡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하나만 클릭해도 같은 지점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다양한 사람의 감상이 연달아 추천된다. 60대 미국인이 감탄사를 내뱉고, 10대 브라질 소녀가 한국어 가사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디즈니가 더 이상 과거처럼 장벽을 투과하는 공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요즘, 모두에게 이질적이어서 도리어 공통의 정서를 찾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중장년층 커뮤니티에 등장하는 ‘백척간두’

우리 입장에서는 그 어떤 할리우드발(發) 문화상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정밀한 고증과 디테일에서 또 다른 연결을 유추하게 된다. 이 영화는 한국 전통문화를 반영한 여러 설정과 캐릭터뿐 아니라 현재의 한국 문화도 고스란히 재현했다. 한국계 감독의 의지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제작 시스템이 ‘철저하게 한국적인 것’에 승률을 걸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이 과정과 관련해 ‘요즘은 K만 들어가면 성공한다’는 식의 흥행문법이 내부에서 언급됐다는 인터뷰 내용도 흥미롭다. 주류 문화권에서 한국에 대한 먼지만큼의 관심을 발견해도 신기해하던 게 불과 십여 년 전 일이다.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흔한 표현의 정점이 지금이 아닐까 싶다.

그런 지금, 우리가 위기라고 말하고 있는 현재를 재정의해 보게 된다. 모든 경제 지표가 암울한 데다 제조업은 후발주자에 따라잡히고 미래 먹거리가 없다는 한탄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으니 위기라는 말도 과장은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생의 모든 단계에서 위기라는 말을 듣고 살아왔다. 온라인 서핑을 하다 보면 중장년층 위주의 커뮤니티에서 ‘백척간두’라는 표현을 수시로 목격하곤 한다.

셀 수 없는 위기를 지나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후진국일 때 태어난 모국이 선진국이 되어 있었다. 급기야 서울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국밥 말아먹는 장면을 미국산 애니메이션에서 보고, 그 작품을 해외 리뷰어들이 굳이 한국어 더빙 설정으로 보는 걸 심상하게 보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서 중년이 된 이들의 저마다의 삶도 이런 시대의 운명과 궤를 같이하는 것 같다. 이들은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와 팬데믹까지 개인의 삶을 위협하는 위기를 지나고도 변화의 주역이자 목격자로서 건재하다. 그러면서도 다음 세대에 대한 단절감과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세상,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동시에 부양해야 할지도 모르는 구조 변화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런 중년들에게,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뜨거운 문화상품이 ‘당신도 이 중심의 일부이며 주역’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1990년대 한국 가요계에서 활동한 ‘듀스’의 《나를 돌아봐》가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넷플릭스 키즈 카테고리에 있는 만화영화 한 편에 깃든 것처럼, 우리가 이미 알 만큼 안다고 여기는 세상 안에도 새로운 공감의 여지가 있다. 

남인숙 작가
남인숙 작가
저작권자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억울한 옥살이”…李대통령, 이화영이 띄운 ‘사면 청구서’ 받을까 바뀐 ‘여탕’, ‘남탕’ 스티커에 여성 알몸 노출…입건된 20대는 “장난” 《미스터트롯3》 眞 김용빈, 인생 자체가 노래다 [단독] 인구부 설립에 5년간 최대 1730억…뜨거운 감자 된 ‘이재명표 인구조직’ ‘36주차 낙태’ 논란 병원장·집도의…살인 혐의로 구속 아버지 이어 또 출마? 트럼프 차남 “결심만 하면 정치는 쉬워” 북한 향해 ‘페트병 쌀’ 살포 시도한 미국인들…무더기 체포 임신부, 미세먼지 노출 시 태아 건강 비상! 중동 전쟁 ‘나비효과’…‘후순위’로 밀리는 러·우크라 전쟁에 유럽 국가들 ‘비상’ 최저임금의 역설, 일자리가 사라진다[라정주의 경제터치] 양도세 두고 딜레마 빠진 당정…강행해도 선회해도 불안불안 與, ‘대법관 증원’ 사법개혁법 속도…정청래 “명분 충분” “벌써 출마설 솔솔”…8개월 만에 돌아오는 조국, 다음 스텝은? ‘광복절 특별사면’ 윤미향…유죄 확정에도 ‘위안부 후원금’ 반환 안 해 [단독] 이춘석 “썩었다고 욕먹는 국회의원도 주식백지신탁 해야”…과거 발언 재조명 부모 보는데 여아 유괴하려한 70대…‘범죄예방 활동’ 법무장관 표창 받아 생후 7개월 쌍둥이 살해한 친모…남편은 “내 탓”이라며 선처 호소 아들 ‘사제 총기’로 살해한 60대…집에선 폭발물 15개 쏟아졌다 “김건희에 ‘나토 목걸이’ 건넸다” 김건희 구속 변수된 서희건설은 ‘알츠하이머병 예방’ 희망 커졌다 [윤영호의 똑똑한 헬싱]